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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005] 인류세 시대의 다시개벽-지구인문학의 개벽학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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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은 ‘다시개벽’을 경고(驚告/警告/敬告)하였다. 무엇을 일러 다시개벽이라 하는가? 선천 오만년과 후천 오만년이라는 말이 가장 도드라진 관련 용어인데, 선천-후천이 지시하는 바를 오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2022년 5월의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인류세 담론이 다시개벽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세란 “인간의 힘이 아주 강력해져 이제 위협적인 새로운 지질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며 “‘지구환경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이 매우 크고 인간의 활동이 대단히 왕성해져 지구 시스템 기능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룰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한 시대구분이다.* 기후위기는 인류세로의 이행에 따르는 폐렴과 몸살 같은 것이라면(그런데, 폐렴은 인간의 주된 직접 사인이다), 그 이면에 근본적인 체질, 체형, 체격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 클라이브 해밀턴, 정서진 옮김, [인류세-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이상북스, 2020(2쇄), 6쪽.


현재까지 공인된 지질시대상 현세는 홀로세이다. 이것은 약1만 년 전,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종료되고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현재의 자연생태계를 조성하였고, 그 속에서 현생 인류의 문명이 성장-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 홀로세를 대체한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가 도래하고 진전되고 있다는 개념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대중화시킨 것으로, 그 기점을 산업혁명(18세기)로 보기도 하고, 핵실험이 실시된 1945년으로 보기도 한다. 전자가 상한선, 후자가 하한선이 될 것이다. 불과 2세기 만에 ‘지질시대의 전환’이 현격해졌다는 것은, 전 지구적 차원의 전환-그랜드지진(超巨大地震)이 일어났다/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륙판의 이동은 지구 생성 이래로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진행되지만, 그것이 속도(=거리/시간)를 달리하여 순간적으로 발생하면 대지진이 일어나고 대해일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일이, 전 지구 생태계-지질계 수준에서 발생하였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수운이 감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전 지구적 수준의 그랜드지진이었고, 그것을 일러 다시개벽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런데 수운의 다시개벽론이 지시하는 바에 따르면 이러한 그랜드지진은 지질학적 차원만이 아니라, 하늘(우주, 생명)과 땅(지구)과 사람(사회)의 세 차원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하늘의 차원에서는 한울님은 인간에 의지하는 존재이지만, 그 조화로 지구(우주)가 운행된다고 함으로써 신(神)의 재발견과 탈-신화화가 이루어졌다. 땅의 차원에서는 천지(天地)와 부모(父母)가 동격이고 동질이며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지구(天地)의 재발견과 탈-지구화가 이루어졌다. 사람의 차원에서는 사람과 만물(지구, 우주)이 모두 한울을 모신 존재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탈-인간화가 이루어졌다. 탈신화화로 시천주(侍天主)를 말하게 되었고, 탈지구화로 만물이 시천주하였음과 땅이 곧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고, 탈인간화로 속물적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신(新/神)인간중심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해졌다. ‘신인간주의’는 ‘비인간사물’과의 공존-공생-공활(共活)을 표방한다. 


수운은 좁은 범위에서는 서세동점을 우려하고 그로 말미암은 동방(東方=東國)의 수난을 걱정하면서 보국안민론을 설파하였지만, 수운의 본의는 십이제국 괴질, 즉 전 지구적 차원의 대전환기의 혼돈을 걱정하고 그것을 다시개벽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시각으로 수운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다시 읽는 것이 인류세 시대의 동학하기의 바른 길이다. 수운의 천-지-인에 걸친 다시개벽론을 계승한 것이 해월의 삼경(三敬-敬天/敬人/敬物)사상이고 의암의 신천신지(新天新地)-인여물개벽설(人與物開闢說)이다. 해월과 의암 역시, 인류세 시대에 걸맞은 독법과 독해와 독공(篤工)이 요구된다.  


이러한 수운-해월-의암의 다시개벽의 사상은 당대의 도인(道人)들에게 얼마나 온전히 의식화가 되었을까? 그것을 물질의 성분 분석하듯이 엄밀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19세기, ‘동학시대’에는 우선 들이치는 비바람과 몰아치는 채찍을 제거하는 그러나 동학 초기의 엄혹한 시절을 견디고, 20세기로 들어와 문명개화의 흐름까지 통섭한 이후 활발한 개벽 담론을 펼쳐 나간 [개벽](1920.6 창간) 잡지에서는 그러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시기는 국내적으로는 3.1운동이 (일정 정도) 좌절된 직후에, 천도교 청년들을 중심으로 다시개벽의 새 판을 짜나가던 때요, 세계적(지구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지구적 파멸적 사건을 경험한 인류가 인도-정의-개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서 새로운 세계상울 구축해 나가던 때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는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전쟁'을 경험하였고, 그와 더불어 '스페인독감'이라는 팬데믹에 노출되어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내던 때였다. 당시 인류가 느낀 위기의식은 기후위기-생태계파멸, 생물종대멸종의 위기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의 인류가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개벽] 창간으로서 '다시개벽'의 미션을 수행하고자 한 당시의 개벽청년들의 입장은 단지 스승(수운-해월-의암)의 가르침을 답습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개벽의 도래-진전-미래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밀고 나가는 입장이었다.  

[개벽] 제3호(1920.8)에 게재된, “우리의 신기원을 선언하노라”라는 소춘(小春) 김기전(-필자 추정)의 글의 한 단락에서는 “땅이 어머니님을 기억하라”는 소제목 하에 ‘지구적 시각’으로 개벽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소춘은 ‘천지부모’라는 말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인데 근래에는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이 무성하고 ‘땅님 어머님’이라는 말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지적한다. 김기전은 하느님은 ‘신’의 이름이고, 그 신은 인간을 떠나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천도교의 시천주 신관을 기정사실화한 바탕 위에서 “인간은 이 자모(慈母)인 땅[地]을 떠나서 상상할 수 없은즉, 결국 우리에게는 자모(慈母)의 땅이 있을 뿐이로다. 대체 생물(生物)이란 것이 무엇이냐. 일종의 땅의 권화품(權化品: 일시적인 변화로 된 물품)에 불과한 것이니, 창세기에 사람은 흙으로써 사람을 창조하였다 하는 것도 이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소위 영혼이라 하는 것은 자모인 땅이 호흡하는 대기의 교묘한 응집에 불과한 것인즉, 어떻게 생각하여도 우리에게는 순실(純實)한 땅의 어머니가 있는 외에 다시 다른 것이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어서 소춘은 지구적 다시개벽 시대에 걸맞은 수양으로써, ‘땅님 어머님’의 품속에 귀의하고, 그럼으로써 여러 형제(인간+만물)와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한다. 그 핵심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를 포옹하는 대지는 우주 대신비의 일대 결정체이니, 저 들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로부터 산하의 돌멩이 모래 한 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나 다 그 신비가 현실화한 한 형상 또는 한 겉옷[服裝] 아님이 없으며, 인류는 그중에 더욱더 그러한 존재라.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요하게 하여 대지의 품속[胸懷]에 들어가면 바로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귀의하는 것과 같아서 사사로운 기운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곧바로 대우주의 신비 그 애틋한 마음ㅡ자기화생(自己化生)의 그 근원에 이르러 세상에 태어나던 그 찰나의 순수와 같은 대 순수를 맛볼 것이니, 복잡한 이 세상에 살면서 잠시나마 이러한 삼매에 들어가는 때가 없고 어찌 자기의 사명을 다 이룰 수 있으리오.


그리고 그의 품속에 들어가면 부지불식간에 인류는 물론이요 이 세상의 만물은 똑 같이 땅 어머니의 한 태중의 소산인 동시에 그들은 확실히 우리 형제라는 가장 진지한 감념을 얻으며, ‘어머니시어! 저는 어머니가 처음 주신 그 순실(純實)로써 여러 형제와 근심과 슬픔을 함께하며 기쁨과 비애를 서로 나누어 그 생명을 공동 번영케 하겠나이다.’ 하는 기도를 스스로 아니하지 못하게 되나니, 이 감념에 이르고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에게 충성하는 순수한 사람[純人]이 될 것이며 전 인류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크고 지극한 정성[大至誠]을 갖추게 될 것이며, 천지와 그 화육을 나눈다는 크고 느꺼운 생각[感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략)


이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무엇 무엇보다도 우선 대지의 자애로운 품에 돌아가서 대(大)순수를 체득하기를 권유하며, 이 세계의 인류는 모두 ‘땅어머니’를 부를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을 미리 말하노라.”

여기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요하게 하여 대지의 품속[胸懷]에 들어가면 바로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귀의하는 것과 같아서 사사로운 기운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곧바로 대우주의 신비 그 애틋한 마음ㅡ자기화생(自己化生)의 그 근원에 이르러 세상에 태어나던 그 찰나의 순수와 같은 대 순수를 맛볼 것이니, 복잡한 이 세상에 살면서 잠시나마 이러한 삼매에 들어가는 때가 없고 어찌 자기의 사명을 다 이룰 수 있으리오."의 대목은 그대로가 동학-천도교의 수행-수양(주문수련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의 과정과 공효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지구위기 시대를 돌파하는 근본바탕으로서, 정치-사회-문화-문명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수양을 먼저하는 그 통찰을, 그 잃어버렸던 100년간의 복음을 되살려야겠다.  

소춘의 글은 그런 점에서, 다시개벽의 가이아(Gaia)론이요, 인류세 시대의 신(新/神)인간 선언, 지구인문학의 개벽학, 개벽학의 수양론이라 할 만하다. 동학이 지구인문학에 이바지할 바도 여기에서 출발하리라 예기(豫期)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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