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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강좌 003] 사건을 내는 천주조화지적 / 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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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모시는사람들 동경대전강좌 오리지털 콘텐츠입니다.


강주영 / 전주동학혁명기념관 운영위원

               


                

'사건을 낸다.', '일 낸다.'는 주로 부정적 용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로 풀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 사건'이라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을 말한다.

그렇다. 모든 사건들은 역사적 사건이다. 돌멩이가 구르는 것은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이다. 하지만 그 돌에 깔린 개미에게는 역사적이며 또 천지가 뒤집어질 사건이다. 잔뜩 무너질 힘을 가진 산의 눈은 모래 한 알이라도 더해지면 거대한 눈사태가 난다. 나비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는 널리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어떤 임계점에 있는 사회는 한 소녀의 작은 행동으로도 거대한 사회혁명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물리학의 복잡계이론은 임계점을 혼돈의 가장자리라고 한다. 창발은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 수운의 표현으로는 불연과 기연의 경계에서 창발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건은 우주적, 역사적 사건(Event)이다. 우주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들의 연속적 체계다.(더 깊이 생각하실 분들은 루만의 '체계이론'을 만나보시기를 권한다.) 사물들의 집합은 관찰되는 것들의 현상계다. 사건들의 연속적 체계는 공간과 시간(역사)의 함수를 갖는다. 경험론, 합리론, 유물론, 관념론 그렇게들 말하지만 그건 유럽 사람들 말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나눠서 말하지 않는다.

수운이 <포덕문>에서 말하는 "개자상고이래 춘추질대 사시성쇠 불천불역"은 사건의 흐름으로서의 시간, 사건이 발현되는 공간, 그것들의 지속적 체계를 말한다. 사건은 본질과 현상을 시간에서 드러낸다. 그런데 수운은 이 사건들을 '천주조화지적'이라 한다. 원문을 보자.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 四時盛衰  不遷不易 是亦 天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개자상고이래  춘추질대 사시성쇠  불천불역 시역 천주조화지적  소연우천하야.(동경대전 포덕문 1절)

"천주조화지적 소연우천하야"를 [천도교경전]에서는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라고 풀고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조화(造化)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의 조화(調和)가 아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을 조(造), 될 화(化)의 조화(造化)는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때문에 종종 조화(調和)와 착각을 일으킨다. "그것 참 조화(造化)속이네."라고 할 때의 조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조화를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일"로 풀고 있다. 

<포덕문> 첫 문장은 천주는 조화자(생성자)라고 말하고 있다. 조화 즉 사건의 생성은 시간과 공간의 연속적 창발 체계라고 앞에서 밝혔다. 천주(천주 그 자체가 누구인가는 동경대전 전체를 읽는 동안 밝혀질 것이다.)가 있는 곳은 삼라만상 억조창생과 동떨어진 옥경대가 아니라 사건들의 흐름이라는 집에 있다. 흔히들 말하는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란 시간의 집 공간의 집이다. 사건들의 집이다. 집 우(宇) 집 주(宙) 우주(宇宙)에서 집 우는 공간의 집, 집 주는 시간의 집이다. 시간의 집은 공간이요, 공간의 집은 시간이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될려면 그 변화의 집으로 공간이 있어야 하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시간이라는 집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이 따로 놀면 천지만물이 있을 수 없다.

<포덕문>의 '춘추질대'와 '사시성쇠'는 사건, 조화 즉 생성의 역동적 변화이며 천주는 그 흐름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수운의 다른 글을 찾아 보자.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가까이 있는 것을 버리고 멀리 구한다.)하단 말가."(용담유사 교훈가)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玉京臺)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虛無之說) 아닐런가."(용담유사 도덕가)

서양철학에는 "실재론"이란 것이 있다. 관념의 허구를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 즉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는 태도다.(유발하라리를 읽은 분들은 그가 '화폐', '국가', '신'을 관념의 허구라고 맹공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유발하라리는 최근 EBS의 <위대한 수업>에 나와 다시 그 주장을 상기시켰다.) 

수운은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나와 동떨어진 옥경대에 있는 초월자를 나와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각지불이(各知不移 동경대전 논학문 13절)한 님으로, 종래의 하느님을 한울님으로 다시개벽한 것이다. 한은 큰 하나이며, 울은 울타리가 아니라 우주만물 생성의 도를 담는 실체를 말한다. 하여 수운에 이르러 천지만물과 사람은 천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괴뢰가 아니라 한울님이 되었다. 도올이 말한 것처럼 수직적 신이 수평적 신이 되어 엇비슷해진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과 사람은 우주적 사건의 주체자, 생성자, 조화자로서 그 자신 한울님이 된 것이다. 평등이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임자, 님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학의 심층적인 민주관과 평등관을 볼 수 있다. 

실재론과 생성론에 대해 필자는 <다시개벽>지 5호(2021년 겨울호)에 이렇게 쓴 바가 있다. 

"(동학의 다시개벽성은) 우주적 사건들의 생성자, 신문명, 신인간,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한 것에 있다. 이것은 동학∙천도교가 서구의 ‘실재론’을 극복했다는 것을 말한다. 실재론은 궁극의 원리가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일성, 단독자성, 불변성은 실재론의 핵심이다. 기독교의 신이 대표적이다. 

생성론은 실재론과 대비된다. 생성론은 궁극의 원리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시공간의 연속적인 흐름에 존재한다고 한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니 담론이 고정될 수 없다. 생성론은 개방성, 협동성, 확장성, 입체성, 불확정성, 연속성, 비선형성의 특질을 가진다. 여기서 비선형성은 결과가 원인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는 뜻이다. 동일 원인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 종래에 인과율은 선형적이라고 봤지만 양자역학에 와서는 인과율이 없지는 않지만 그 결과는 비선형이어서 답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우주와 문명의 확장성이다. 동학의 조화자造化者는 생성자生成者다. 생성자는 무사불섭 무사불명 無事不涉 無事不命(동경대전 논학문12절)하며 사건의 모든 과정에 있다. 이는 초월자의 사사건건 개입, 신의 독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먼지 하나도 전 우주적 상호성 속에서 생성된다는 뜻이다."

천주는 천지만물 사람과 서로 따로 놀아 천지만물과 사람을 괴뢰로 삼는 '각자위심'(各自爲心동경대전 포덕문 4절)한 존재가 아니다. 천주는 천지만물과 따로 놀 수 없는 우주적 사건의 일체자로서 나와 '각지불이'한 존재다. 

이번 글에서는 천주조화지적에 대해 살펴봤다. 다음 글에서는 <포덕문> 2절의 논쟁적인 우부우민(愚夫愚民)에 대해 함께 읽는다. 우부우민이란 어리석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각하기 전의 수운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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