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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칼럼 004] 조선에서의 위자보드와 분신사바 / 박병훈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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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오컬트 영화를 보며 더위를 식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를 열고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영화 보는 만큼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런 영화들 사이 흔한 주제 중 하나가 재미로 영을 불러왔다가 사실은 무시무시한 악령을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보통 제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잊고 그로 인하여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다. 

 

이렇게 영을 불러올 때 자주 등장하는 도구가 위자보드(Ouija board)다. 보드에는 숫자와 알파벳이 배열되어 있고, ‘예’, ‘아니오’, 그리고 보내는 것을 잊지 않도록 친절하게 ‘안녕(Good bye)’ 등의 단어 역시 있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풀랑 셰트라는 작은 판에 손가락을 대고 질문을 하면 이 판이 저절로 움직여 답을 하는 방식이다. 19세기 중반 강신술의 열풍에서 위자보드는 기인했는데, 요사이는 보드게임 파는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분신사바’라 하여 필기도구를 두 명이서 잡고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와서 글씨를 쓴다 하는데, 이와 비슷한 일본의 ‘콧쿠리상’ 의식의 영향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의식들은 직접 해본 바는 없으나, 계속 무서운 실화 등으로 인터넷 상에서 이야기가 떠도는 것을 보면 여전히 ‘영과의 소통’이라는 믿음은 현대사회에서도 건재한 듯하다.

 

조선 시기에도 위자보드, 분신사바와 비슷한 일들이 전한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두 사람이 모여서 하는 필점(筆占)이 소개된다. 낮과 밤 상관없으며, 한 사람이 주문을 읽고 질문을 하는 역할이며, 다른 사람은 종이 앞에 붓을 들고 있는 역할인데, 필점주, 영보주 등의 주문을 외우면 신이 와서 붓이 저절로 움직인다 한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경우처럼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친구 대하듯 먼저 이름과 자호, 그리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를 묻는다. 이후 시를 짓게 하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혹은 점을 봐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불려온 영은 요청자가 먼저 읊는 시구의 뒷부분을 이어서 짓거나, 삐뚤빼뚤 그림을 그리거나, 앞날을 모호하게나마 봐주기도 하였다. 보통은 시를 잘 지었는데, 물론 이 시는 잡고 있는 붓이 저절로 움직여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필점은 술법 중 가장 낮은 것이라 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다 하였는데, 결국은 시골 글방 스승이나 소 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무료함을 이기는 한때의 유흥거리로 생각하였다.

 

이규경은 또 한편으로 이와 관련하여 1822년 경기 양주목 좌랑 김기서(金基敍)의 집에 나타난 청로장군 정득양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김기서의 집에서 낮에 홀연히 한 신이 내려와 스스로를 고려 말의 ‘청로장군 정득양’이라 칭했는데, 갑주(甲冑: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은 장군의 모습이었다 한다. 내려온 이유는 자신이 장례를 김기서의 집 뒤에 치렀는데, 묘도(墓道)에 어지러움이 미쳐서 더러움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기에, 자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달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후한 보답이 있을 것이라 하며 자신의 형을 포은 정몽주라 소개하기도 한다. 제사를 지낸 뒤 정득양이라 칭하는 귀신은 고려 말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기도 하였고, 시를 행운유수와 같이 지어내기도 하였다. 시험삼아 옛사람의 시를 골라서 한 구를 읽고 그에 대한 대구(對句)를 청하면 옛사람의 본래 시와는 다르더라도 정밀하고 우아한 대구를 바로 소리내어 불러주었다. 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들보 사이에서 시를 지어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한다. 이규경은 이러한 귀신 소동 역시 자고(紫姑), 기선(箕仙), 부란(扶鸞), 강기(降箕)의 술법으로 여겼는데, 모두 다 앞서의 필점(筆占)과 통하는 말들이다. 물론 정득양의 경우 다른 이들에게 모습이 보이는 일종의 귀신이라 다소 경우가 다르지만, 시를 통해 소통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여긴 것이다.

 

이 술법들은 중국에서의 부계(扶乩)와 연관된다. 부계는 예부터 민간에서 신명을 불러 앞날의 길흉을 아는 방법으로, 정(丁) 자 모양의 나무를 사반(沙盤) 위에 두고, 두 사람이 이를 잡은 뒤 청신(請神)하는 방법에 따르면, 사반 위의 나무가 움직여 문자를 그려 내어 길흉화복의 일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부계는 과거 자고신(紫姑神)에서부터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라야마 지준(村山 智順, 1891~1968)의 『조선의 점복과 예언』에서도 나타나지 않음을 볼 때, 이미 일제강점기 때에서부터도 민간에서는 잘 행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보듯 이러한 술법은 불러온 귀신과 서로 시나 짓는 심심파적의 유흥거리에 불과하였지만, 그 소통의 측면에서 볼 때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교의 경우 천(天)은 인간에게 직접 말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성인이 천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펼쳐내는 구조를 띤다. 곧 유교의 천은 침묵하는 천이고, 물어도 대답 없는 천이다. 이 천은 동학에 와서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한다. 말하고[降話] 쓰는[降筆] 천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중 강필은 부계와 관련된다. 심심파적의 유흥거리가 천과의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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