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뒤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Review

Review

서평 : '은혜철학의 발견' (김나경)

(ip:)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은혜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이주연 지음 / [은혜철학의 발견] / 모시는사람들 / 2023

 

김나경 박사 (성공회대 연구교수/The품 대표)


 * 이 글은 KCRP기관지 <종교와 평화> 2023년 5월 31일자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수동적으로 받는 것에 익숙한 신앙생활을 한 필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접한 아웃 종교인 원불교의 법신불 사은(四恩) 사상과의 만남에서 참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의 전유물인양 즐겨 사용하고 간절히 받기를 소원하던 은혜가 원불교의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어린 아이가 내 것이라 여기던 소중한 인형을 빼앗기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자에게 도반 이주연 교무님이 출간한 󰡔은혜철의 발견󰡕은 그동한 궁금했던 원불교의 은혜의 의미를 폭넓게 이해하고 은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신학적 사유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책을 펼치고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리스도교 목사이며 신학자인 필자와 사용된 학술적 용어의 미세한 차이만이 존재할 뿐 동일한 사유와 고민이 담긴 원불교 여성 교무님의 글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내야 하는 여성 종교인으로서의 동병상련을 느끼는 기쁜 책읽기였음에 감사드린다.


이 책은 존재를 사유하는 방법과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와 삶의 윤리를 소태산 대종사의 사은 사상, 즉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과 법률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현실 세계에 적용한 은혜철학이다. 그것은 ‘은혜로 시작된 얽힘’, ‘은혜로 통하는 대화’와 ‘은혜로 읽는 세상’ 등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지만물이 마르틴 부버가 말한 것처럼 “나-너-그것”이 “영원자-너” 안에서 하나 되는 것처럼 천지의 도인 은혜로 얽히고 순환하는 관계적 존재이며, 그 때문에 모든 존재는 은혜의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 은혜의 의미를 수양학, 타자철학과 생태학 등 다양한 현실적 주제들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풀어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존재의 본질과 현상을 은혜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연구방법론에 근거해서 관계철학을 새롭게 정립한 독보적인 “은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은혜를 불교의 물성과 자비와 구별하면서 소태산 대종사의 “포괄적 창조성”에 근거한 원불교의 핵심 교리라고 정의한다. 은혜는 인위적으로 덧입힌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진리(無爲自然), 곧 생명 자체이며 또한 생명을 가능케 하는 존재의 근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생명 현상은 은혜의 작용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은혜는 손으로 부여잡을 수 있는 명사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꿈틀거리는 생명 그 자체로서 동사, 곧 “은혜하다”이다. 그러므로 은혜는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의 속성이며, 이 은혜를 기반으로 지구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한다. 이때 ‘은혜’는 단순히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호혜적인 것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전] ‘천지은’에서 언급한 것처럼,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를 의미하며, 그 근원은 만물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천지의 여덟 가지 도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천지의 도를 은혜로 재해석하며 [대종경]에서 “천지의 식은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가 없는 식”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러한 천지의 무차별적 은혜의 특성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천지가 도를 행하면 은혜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여기서 저자는 은혜의 의미를 종교의 영역을 뛰어넘어 병들어 가는 이 세상을 치유하고 본연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윤리와 생태윤리로까지 확대시킨다. 즉 이 은혜의 관계를 단순히 신과 인간의 종교적-수직적 관계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라는 천-지-인 삼재로까지 확대시킨다. 그 때문에 ‘은혜’의 주체는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만이 아니라 광물과 자연물 같은 비인간적 존재도 될 수 있다. 은혜의 관계 안에서는 주객이원론, 곧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 본체와 현상의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틸리히가 말한 것처럼 생명의 다차원적 현상일 뿐이다. 천지인이 서로 주체가 되어 서로를 살리는 공생의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은혜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보적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완전한 텅 빈 상태가 아니라 풍부한 생명력이 작동하는 상태인 천지불인에 근거한 이상적인 지구공동체로서 은혜에 근거한 보은공동체를 주장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은혜를 받은 존재이고, 서로 은혜를 갚아야 할 존재이다. 우리는 [정전] ‘천지은’에서 말한 것처럼 천지의 은혜에 ‘보은(報恩)’을 해야 한다. 보은을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배은(背恩)’이 된다. 그것은 존재 자체, 생명과 공생, 평화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천지의 도를 본받지 못한 천지 배은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해(罪害)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보은과 배은의 양자택일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구 구성원이 맺고 있는 은혜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은혜 또 의미하며, 그 근원은 만물의 생명을 하는 배은의 관계가 생태적으로 기후위기 또는 기후평화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보은과 배은에 따라서 생명존중, 공생과 연대, 환대와 평와냐 아니면 아니면 차별과 혐오, 소외와 위기냐가 결정된다. 이렇게 은혜의 관계 속에 있는 모든 존재가 지향하는 은혜는 ‘보은공동체’라는 실천적 개념을 내포한다.


이 책은 은혜에 대한 존재론적-관계적 이해만이 아니라, 이 은혜의 관계를 우주적 지평으로 확대시키며, 은혜의 실천으로서 모든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타자를 환대하는 보은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사회윤리직-생태윤차원으로 확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은혜의 얽힘은 절대로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자연은 파괴하지 않으며, 타자에 대한 환대, 기후위기의 극복과 범종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생명평화를 추구한다. “은혜는 특별한 혜택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연대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이 은혜로워지는 순간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원불교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모든 차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한 이해, 십계명에 나타난 천지인에 대한 보은 사상, 예수의 선포와 삶속에 나타난 은혜의 삶과 실천, 그리스도교의 신-인-자연의 합일을 지향하는 통전적인 구원관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지향하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점에서 원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하겠다. 


끝으로 은혜철학을 새롭게 정립한 이주연 교무님의 학문적 여정을 두 손 모아 응원하면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모든 존재가 은혜로 얽힌 관계적 존재이며, 천지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서 보은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과 수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댓글 수정
취소 수정
댓글 입력

댓글달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등록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