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종교인구 감소 시대, 인간의 삶의 의미를 어떻게 물을 것인가?
오늘의 시대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기준을 여러 가지로 제안할 수 있겠지만, 그중 ‘종교인구 감소 시대’라는 것도 유용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는 가장 최근의 조사(2015)에 따르면, 그 전 10년 전(2005)에 비하여 9%가량 ‘급감’ 하였다. 각 종단별로 증감에 차이가 있고[천주교, 불교 감소, 개신교 증가], 그에 따라 종교인구 순위가 변동[불교가 1위에서 사상 최로로 2위로]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은 종교인구가 ‘대세적으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종교인구의 ‘고령화’나 ‘성직(지원)자의 급감’ 등도 이러한 추세의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종교인구의 ‘감소’는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종교’가 자리 잡은 이래 100여 년 만에 맞이하는 ‘특이한’ 현상이다. 개항 이래, 혹은 천주교(서학)의 유입 이래 조선(한국)은 종교인구의 ‘폭발적’ 증가, 거대종교의 공존(共存) 등의 현상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로 보고되곤 한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종교인구’의 추세적 감소가 목격되고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사태가 아니다.
각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의 ‘메이저급’ 종단별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안을 활발하게, 은밀하게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썰물’이 시작되는 바닷가에서 물위에 뜬 부표의 제자리를 지키는 일만큼이나, 신자수 감소세를 역전시키는 일은 난명(難望)해 보인다. 이미 음으로 양으로 ‘파산’을 신청하는 교회가 한둘이 아닌 상황은, 앞으로 마주할 ‘종교인구 감소 시대’의 서막(그러나 본질적이지도 않은)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대에 종교와 신앙에 관한 질문은 ‘제도종교(종단)’ 단위에서의 ‘각자도생’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강한)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의 위상과 정체성을 묻는 것이나, 변곡점을 넘어선 지구온난화시대에 생명(생태계)의 존폐 문제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종교의 관계, 인간과 신(앙)의 문제를 따지는, 좀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종교란 무엇인가, 누가 언제부터 종교를 말하였다
흔히 말하는 대로 ‘종교(宗敎)’라는 말(개념)은 인간과 더불어 그 시원을 같이 해온 것이 아니라, 근대(19세기 전후)라는 지극히 최근세의 시기에 서양(西洋)으로부터 유입된 ‘religon’의 번역어에 불과하다. 최근세까지 우리 사회(조선-동아시아)에 익숙하고 유용한—그러면서 ‘종교’와 유사한--범주는 교(敎), 학(學), 도(道)와 같은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 사실을 안다 할지라도, 그것의 의미를 물을 여유도 없었거니와, 그 차이가 당면한 문제에 그다지 유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종교인구가 감소하며 그동안 우리 인간(한국인)의 존재 규정이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종교의 패러다임과 위상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혹은 지금이라도 물어야 하는 것은 ‘종교’라는 말의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종교-서구적/세계종교적 패러다임’의 위세에 짓눌려서, 반성적으로 재고할 수 없었던 우리들 인식의 정당성, 근대적 지식(상식)의 정당성을 회의할 수 있을 때, 회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우리가 상식으로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개념(어)들은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들여온 개념들도 바로 그 19말-20초 사이에 형성된 기본개념의 토대 위에 쌓아 올려지게 되었다. 종교 개념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식 틀로서 우리의 행동의 바탕이 되었으며, 단순히 1/n로 치부할 수 없게끔 우리(한국, 동아시아)의 삶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제강점기 ‘종교’와 ‘유사종교’의 개념화와 그에 따른 종교정책, 법제화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 유사)종교에 대한 탄압은 그나마 자주 다루어져 온 사례라고 한다면, 이러한 서구적 근대의 틀과 식민시대의 종교정책의 틀의 연장선상에서, ‘민주’나 ‘자유’ 그리고 ‘문명’의 이름을 팔아 실제로는 ‘종교’적 이식 작업을 거듭해 온 해방 이후의 종교 흐름을 근본적으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졌다.
지금 한국 근대 종교의 의미를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 <한국 근대종교란 무엇인가?>는 바로 그것을 묻는 책이다. 이 책은 먼저 ‘종교 개념’의 형성의 역사와 한국사회 및 동아시아에서의 등장 배경을 살피고[2-4장], ‘종교’와 ‘세속’의 구분이 어떠한 연원하에 이루어지고, 한국 근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고찰한다[5-6장]. 이어 한국 근대 시기의 구체적인 종교현상[개신교, 동학-천도교, 불교]에서 앞에서 고찰한 ‘종교’ ‘종교-세속’의 문제가 어떻게 관철되고 반영되는지를 살펴본다[7-9장]. 또한 한국사 전체는 물론이고, 한국 근대 종교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3.1운동에서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의 변화와 그 가운데 종교-문화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이 한국 근대종교의 지형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고찰한다[10-12장]. 끝으로 13장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유사종교’ 혹은 ‘사이비종교’가 문제될 때마다 호출되는 ‘백백교 사건’의 내막과 그 영향을 고찰한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초월적인 것’으로 여겨 왔던 종교 개념이 실제로는 어떤 ‘편향성’에 기초해 있었는지를 따져 보고, 그 ‘색안경(콩깍지)’을 벗어 던지기를 고대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러한 ‘탈각’이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 인간의 삶의 양태,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의 관계설정이 유사 이래 가장 큰 변곡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 책 속으로
●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종교 연구는 대체로 종교 전통별로 진행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도교 혹은 신종교 등의 종교 전퉁을 분류의 기본단위로 하고, 각 종교 전통에서 어떤 연속성이 유지되었는가,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를 살피는 것이 주된 방식이었다. … 이처럼 종교 전통이 종교를 구분하고 연구하는 기본단위가 된 것은 … 19세기 말부터 … 이른바 ‘세계종교(world religion)’이라는 패러다임이다. … 하지만 최근의 연구 가운데 … 이런 ‘세계종교’ 패러다임과 종교 다원주의의 관점 자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문제로 삼아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 이럴 경우, ‘세계종교’ 패러다임 안에 머물면서 그것을 계속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반복 작업을 하는 대신에 ‘세계종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비로소 검토할 수 있게 된다. - 본문 13-14쪽
● 종교학은 특정 종교 집단에 소속되어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무기로 하면서 인간의 전체적 맥락에서 보편적인 종교 의식(意識)에 관해 발언하였다. 또한 국가권력에 대해서 종교의 강력한 영향력을 내세우면서 국민 통합의 중요한 기반임을 강조하여 국가의 제도적 학문 체계에서 종교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일본에서 종교학이 제도권에 자리 잡은 것은 1898년 도쿄제국대학에서 종교학개론이 설치되면서 이루어졌다. 일본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아네자키 마사하루(姉崎正治, 1873-1949)가 1900년『종교학개론』을 발행하면서 종교학은 학문적인 기반을 마련하였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점차 확대되어 갔다. - 본문 61쪽
● 전통 시대의 세속 용어는 근대성의 형성과 함께 만들어진 종교-세속 이분법에서의 세속과는 다르다. 종교-세속 이분법에서 종교라는 범주와 세속이라는 범주는 서로 의존적이다. 종교가 아닌 것이 세속 영역이고, 세속이 아닌 것이 종교 영역이다. … 종교-세속 이분법에서 세속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대립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종교 자체를 포괄할 정도로 그 범위가 넓다. 하지만 세속은 늘 종교를 파트너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다. 종교-세속의 이분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890년부터 1940년까지의 시기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한데, … 다음의 세 가지 담론이 서로 작용하며 종교-세속의 이분법을 공고하게 하였으므로, 각각을 검토한다. 세 가지는 각각 종교 신앙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 교육과 종교의 분리 담론이다. - 본문 111쪽
●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변화는 단지 명칭이 바뀌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학(學)과 교(敎)의 개념에서 종교(宗敎)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는 종교에 함축되어 있는 범위 설정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종교 자유의 특권을 누리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 ‘동학란’을 다시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구심, 그리고 일본 세력에 의존하면서 친일 활동하는 일진회에 대한 반감 등 동학 교단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손병희는 종교 개념에 따라 정치 활동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교단을 바꾸고자 하였다. 동학을 종교로서의 천도교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천도교의 강령에 정교분리가 아니라, ‘교정일치(敎政一致)’를 명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종교로서의 천도교가 지닌 모순이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이 천도교의 적극적인 3·1운동 참가에서 잘 드러나게 된다. 손병희가 1919년의 3·1운동에 참가하면서 스스로 교주(敎主) 직을 사직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본문 172쪽
● 3·1운동을 민족의 문제로 본 천도교와 개신교 신자들에게 종교의 차이는 문제되지 않았다. 3·1운동을 계기로 많은 수의 개신교인과 천도교인들은 종교와 민족 개념을 융합시키면서 자국 정부가 망명해 있는 상태에서 일제의 강압 통치를 견뎌 나고자 했다. … 따라서 이 시기의 종교단체는 현재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종교단체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종교는 자신을 대변해 줄 민족적 정치체가 결여된 상태에서 스스로 그 기능을 자처(自處)하는 모습을 띠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처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 본문 218쪽
● 한국에서 종교 연구는 경험적인 자료 수집을 강조하고, 문헌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 근대적 학문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 자료를 경험적으로 수집하고 텍스트를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건으로 여겨졌으며, 이른바 ‘객관적’ 혹은 ‘과학적’인 태도라고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 배후에 있는 전제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며, 객관성 혹은 과학성의 포장 아래에 있는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또한 그런 태도의 전제를 개신교적 관점에서도 공유하는 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제시대 종교 연구가 배태하였던 기본 맥락, 즉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맥락을 간과하게 된다. - 본문 255쪽
● 종교 개념, 그리고 그와 연동되어 나타난 ‘종교-세속’의 틀은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수용한 지도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이 지도를 받아들이게 된 맥락과 과정을 살피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동아시아(일본, 중국, 베트남)의 경우를 비교해 보는 것은 지금 그 역사적 유산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적지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이런 작업 모두에 우리가 물려받은 종교 개념과 ‘종교-세속’의 틀이라는 지도를 음미하면서도, 거기에 무작정 휘말리지 않으려는 자세가 함축되어 있다. - 본문 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