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하셨습니까? 언제 밥 한 끼 같이 하시죠!”
“밥만 잘 차려도 웃으며 사는 현자가 될 수 있죠!”
혼밥도 없고, 독식도 없는 사회라면 좋겠어요!
제대로 먹는 밥이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립니다
사람이 밥값만 제대로 해도 세상은 살만합니다
■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밥값 하나에 나라가 휘청거린다.’ 이건 식당 물가 얘기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며 조아린 끝에 일본에 건너가 밥 두 끼 먹고 퍼준 비용(위안부 및 강제징용 관련)을 두고, 현금(現金)으로나 심금(心琴)으로나 나라를 바친 셈이 아니냐며 터뜨린 분통이 온 나라에 차고 넘쳐서다. 밥값하며 산다는 게, 이처럼 어려운 일이고, 소중한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다.
1.
가히 ‘밥들’의 전성시대다. “밥값 하며 살자.”는 말은 오래된 상투어이지만, 오늘날처럼 이 말이 여러 측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엔, ‘밥값’이 고공행진을 하며, 좀 더 싼 밥집, 좀 더 저렴한 메뉴를 찾아 헤매는 직장인 얘기가 회자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절규는 지금도 자본-노동 양측에서 여전히 악을 쓰는 중이고, 온전한 ‘한 끼니’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한편, 오늘날 ‘밥 먹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한 끼의 의례, 세련된 문화를 소비하는 간절한 과시, 고된 노동에 소확행의 보상, 마음의 공허를 채우는 영혼의 양식이다. 그래서 맛도, 가격도, 메뉴도, 사진도,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밥’ 먹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간의(한국사회의) 오래된 딜레마가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라는 질문인데, 요즘 같아서는 현상적으로 볼 때, 확실히 승패가 갈린 셈이다. 먹방이 10년째 방송가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어서다. 유튜브 채널에서 수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아이템 중에서도 먹방은 단연 인기 있는 분야다. 훈남의 필수요건이 요리실력이 된 지 오래고, 나만의 레시피를 공개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유튜버나 트위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방송뿐만이 아니다, 대도시 곳곳에 숨은, 신흥의, 고수의, 핫한 맛집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맛집 순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때 순례는 성스러운 장소를 찾아간다는 성지순례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바야흐로, 먹는 것이 생존의 필수조건임을 넘어, 성스러운 행위가 되고, 존재의 이유가 되고, 살아가는 낙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야말로 밥들의 전성시대이다.
2.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렇듯이 밥의 소비에 열중하는 사이, 전 지구적으로는 식량 생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로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그로 말미암은 기후재난이 나날이 심화되고 거대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채식 - 자연식물식’을 윤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건강하고 안전하며,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식사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게, 혹은 사회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속에서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을 내세우는 유기농 업체가 수십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세계적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게 되었고, 귀농귀촌을 비롯한 새로운 조류가 사회 저변에서 굳건한 흐름을 형성하는가 하면, 도시농업이라든지 텃밭 등을 통한 대안농업 등이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건강한 먹거리와 직접 간접으로 연결된, 이 시대 사회의 한 단면들이다.
먹거리의 안전은 이제 분명한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돌파하여 100억 명이라는 꿈의 숫자를 향해 여전히 질주하고 있고, GMO를 매개로 세계의 식량 생산-소비 메커니즘과 인간 생체의 안정성을 담보로 한 초거대 실험은, 많은 시민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가속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 ‘혼밥’이 또 다른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1인 가구가 최다 유형이 되었으니, 당연한 추세이며, 이제 새삼스러울 것 없는 풍경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혼밥에는 프라이버시 존중으로 포장된 외로움과 고립의 냄새가 묻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같이 먹어야 할 밥을 알게 모르게 독식하는 추세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밥에도 빈익빈과 부익부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3.
저자 전희식은 “제대로 된 밥”은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고 말한다. 그가 직접 농사를 지어 먹으며 체득한 진리이고, 연간 수십 차례의 강연에서 강조하며, 또 청중의 피드백을 통해 확인한 진리이고, 주경야독으로 놓치지 않고 읽어가는 수많은 생태, 생명, 귀촌귀농 관련 서적들에서도 누누이 증언하는 진리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앞에서 열거한 수많은 ‘새로운 먹거리 문화’들에 종사하는, 열중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은 순수하거나 열정적이거나, 간절하거나 때로 생산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저자는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먹는 행위’는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 - 以天食天(이천식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날, 인간이 야기한 지구위기 시대에 즈음하여 함께 먹고, 나눠 먹고, 아껴 먹는(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먹는 것 가지고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어!’라며 항변할 일만은 아닌 셈이다.
저자는 우리가 늘 마주하는 밥상을 제대로 차리고, 바르게 먹음으로써, 나와 세상을 살릴 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한 차원 고양시키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세탁기 사용 대신 손빨래를 하며 깨달은 사례가 흥미롭고도 유쾌하다. 무엇보다 밥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먹어야 하고 독식하지 말고 나눠먹어야 하며, 억지로 먹지 말고 자연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먹는 일에는 가족, 공동체, 삶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로 건강하고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들에게 다가가는 길,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대한 이야기도 풍부하게 담겼다.
그런가 하면,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조금은 불편해져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거나, 아직도 부지불식중에 ‘설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지만, 그 사이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밥그릇 싸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회에,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밥을 둘러싼 싸움이 그치질 않는 것은 그만큼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란다.
“밥은 하늘입니다”라는 말은 동학의 핵심 교리이지만, 어느 종교에든 있는 교훈이고 진리이다. 종교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 그릇 밥의 생산자’들과 ‘자연인’들이 인증한 진리이다. 기후위기에 즈음한 세상, 아니면 하루하루 밥 벌어 먹고 살기 팍팍한 사회! 어느 쪽에 관심을 두든, 오늘 아침 마주한 밥상, 이 밥상, 그 밥의 의미만 제대로 알면 ‘만사형통’이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 책 속으로
● 요즘은 신(神)이 곧 자연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가고 있다. 절대적 위치의 이원론적 신관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신성성의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에도 이미 150년 전 동학에서 ‘천지부모가 하늘님’이라고 설파한 진리이다. 이런 흐름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삶을 복원하여 순리의 삶을 살아가자는 염원의 발로이다. 이것이 농업 본연의 역할이고 귀농 흐름의 저변에 있는 염원이다. - 본문 31쪽
● 농민 기본소득제를 하면 진짜 실력 있고 신실한 사람들이 부상할 것이다. 2022년 기준 농업예산 16조 8,756억 원이 엉뚱한 데로 다 새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안 될 것이다. ... 이렇게 농업이 살고 농촌이 살면, 덩달아 도시가 살고 나라가 살고, 위기, 위기, 위기를 말하기 급급한 인류 문명이 살길이 열리게 된다. 길은 거기에 있다. - 본문 57쪽
● 생태주의자인 나는 ‘소비’를 경계한다. 소비는 생산을 촉진하고 경제를 굴러가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뉴딜정책은 소비 능력을 무더기로 뿌려주는 정책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파란 하늘을 보지 않는가?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면 쓰레기가 될 물건을 함부로 만들어냈고 함부로 소비해 왔다. ... 자연과 조화로운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장기적 상상이 필요한 때다. 이것이 지금의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살리는 길이다. - 본문 98쪽
● 지금 우리는 각자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집안을 둘러보면 그렇다. 신발? 옷? 모자? 장갑? 양말? 다 넘치게 많다. 자동차나 티브이는? 노트북은? 가전제품은? 성능이 좋아 신형을 샀어도 구형은 아까워서 그냥 가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기업에서나 가지고 있던 빔 프로젝터를 요즘은 개인도 갖고 있다. … 꼭 필요할 듯해서 사지만 1년에 몇 번 쓰지는 않는다. - 본문 167쪽
● 동물의 불행은 곧 인간의 불행과 직결된다는 것을 뒤늦게 사람들은 깨달았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실상은 인간이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며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 동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봐야 할 때이다. - 본문 205쪽
● 현대 농업, 현대 축산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성장을 촉진하고자 성장호르몬제를 넣고 운동을 제약하는 시설 안에서 키운다. ... 이런 상태에서 자란 농작물과 동물성 음식을 먹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다량으로 생긴다. 당뇨와 비만, 고혈압과 그로 인한 합병증이 생긴다. 식욕부진과 피로감과 우울증 등등 끝이 없다. - 본문 245쪽
● 탄산음료와 튀김류 음식이 학교에서 사라졌듯이 동물성 식단이 학교에서 먼저 추방돼야 한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유해 음식 명부에 육류를 포함시켜야 한다. 최소한 소와 돼지, 닭들도 ‘생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거나 슬레이트 판 위에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은 없다. 육식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예상한다. 오래지 않아 채식이 문명인의 기준이 되고 지구인의 교양이 될 것이다. - 본문 251쪽
● 식고(食告)는 음식 앞에서 하는 심고다. 생활 속에서 신적 합일을 중요시하는 동학은 가장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합일의 생명 행위가 먹는 것에 있기 때문에 심고의 세분화된 행위로 식고를 한다.
음식 앞에서의 심고를 식고라 하여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밥 한 그릇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천지의 도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만사가 결국은 밥 한 그릇의 이치 안에 들어 있다는 가르침이다. 천도교 음식문화의 핵심은 이 식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본문 275쪽
● 예로부터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한다.’는 말이 있다. 기제사, 세사, 사시제, 한식성묘 등 지내야 하는 제사가 끝이 없다. 제상을 차리는 데에 허리가 휜다. 모든 제물을 청수 한 그릇으로 바꿔 놓는 것은 형식과 허세에 치우친 유교문화 제례를 질타하고 오직 정성 하나만 지극한 마음으로 모시면 된다는 의식과 일상의 대전환이라 하겠다. 빈부격차를 따지지 않는 상차림이 가능해진 것이다. - 본문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