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례
- 머리말
- 일러두기
- ㄱ ~ ㅎ
상품명 | 동학 천도교 인명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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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요약정보 | 이동초 편저 | 동학아카이브 - 동학천도교사전연구회 기획 | 1780쪽 | 188×260mm | 양장 | 2015년 4월 5일 발행 | ISBN 978-89-97472-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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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신구 양파로 분열되어 있던 교단은 일제의 팟쇼 동원전시체제 하에서의 수난을 겪어야 하는 피할 수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일제당국의 합동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자 교단은 합동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937년 9월경 신구양파를 대표하는 권동진, 최린, 최준모, 정강조 등이 월간잡지三千里에 기자와의 대담형식으로 <양파합동 및 시국에 대한 진로>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는데 네 사람이 모두가 천도교인 수를 60~70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어 신빙성을 갖게 한다. <머리말 중에서>
현재까지 동학시대는 물론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이후의 교인들에 대해 정리한 교단의 기록은 없다. 1911년 8월 중앙총부에서는 교호 관리를 위해 가족별로 기록되는天民寶錄을 작성하기 시작하여 1918년까지의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삼일운동으로 인해천민보록의 작성은 중단되고 말았다. 천민보록은 현재 중앙총부에 보존되어 있는「京城敎區」및「京城敎區」乙號 2책 외에 1930년대 충청북도 일부를 중심으로 엮은천민보록1권이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머리말 중에서>
필자가 입수한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 내에서 작성된 1,250명에 달하는 포로수용소내의 천도교인의 명부를 참고로 하였는데 이 명부는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로 석방되기 직전에 논산 지구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명부에는 기존의 교인들도 있었지만 1952년을 전후하여 거제도를 비롯한 포로수용소 내에서 입교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당시 포로수용소 내에서는 <The Chundo Religion>이란 영어 간판을 걸고 일요일이 되면 천도교인들이 함께 모여 천덕송을 부르며 시일식을 행하는가 하면 월성미는 하루에 한 개비의 담배로, 연성미는 작업복 한 벌로 하여 부산시교구에 납부까지 하는 등 천도교 신앙을 하고 있었다.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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