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라도 수많은 새와 지역주민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방식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및 사회적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다양한 생물들과 공존,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은 사람들, 특히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각성과 변화된 행동을 촉구한다. 위대한 비행을 감행하는 새들이 계속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23쪽, 주용기, “위대한 비행을 감행하는 새들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생을 바라며”)
2021년 말, 추운 겨울 시작되었던 지하철 선전전은 어느새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언론의 관심은 낯설지 않았던, 예전의 무관심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7개월간 매일 아침 이어졌던 지하철 시위는 많은 것을 바꾸기도 하였고,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중략) 싸울 수밖에 없어 싸워야 했다. 7개월간, 아니 지난 20년간 삭발을 하고, 버스를 막고,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며 장애인들은 존재를 드러냈다. 그 덕분인지,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항하는·싸우는 장애인으로 조금씩 읽히고 있는 듯하다. <25쪽, 서재현,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급진적으로 가속 변화하는 것이 개벽이다. 가속 변화는 질적 전환의 연쇄작용이 급진적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개벽이 지구와 인류 모두를 모시는 개벽이 될지, 파국의 개벽이 될지는 불확정적이다. 지구 개벽의 현실적 모습은 생물멸종, 홍수, 가뭄, 폭염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는 파국으로 보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발적 진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인간 대공격인 코로나19 대유행도 출현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는 인간에게 위협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자기생명의 자기조직화를 진행하는 자기살림이자 자기생성 과정이다. <43쪽, 강주영, “시작된 개벽 - 생산문명에서 생성문명으로의 이동”>
치유는 곧 내 안의 한울님(신)을 발견하고 모셔가는 일이다. 삶을 꾸려가는 일이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이와 다를까? 이제서야 삶과 죽음, 치유가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는 것 같다. <70쪽, 권이현, “치유_내 안의 한울님을 발견하고 모셔가는 일”>
아이들이 태어나도 여성들이 다시 일하던 직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그 직장에서 엄마라는 이유로 업무 능력이 폄하되거나 배제되지 않기를, 양육자가 모두 육아휴직을 눈치 보고 쓰지 않게 되기를,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되기를, 깨끗한 공기와 물을 모든 생명체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길, 아이들은 자라며 존중과 평등과 평화를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100년 뒤 세상에 대해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73쪽, 서혜연, “사랑을 물려 줄 수 있을까”>
지리산정치학교는 문명전환을 위해 이중적 정치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당 안에서 문명전환정치의 의제를 추동하고 정당 밖 현장에서 정당의 정치활동을 추동하는 이 둘이 상호 보합 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둘 사이에서 또 다른 문명전환적 정치사건이 생성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81쪽, 이무열, “문명전환 하는 지리산정치학교”>
누구나 살면서 삶의 모순을 느낀다. 대부분 그런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서도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거기에 의문을 품거나 적극적으로 해답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석가는 ‘생로병사’의 의문을 풀기 위해 출가 수행을 시작했고, 조선조 말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은 민생과 나라가 모두 망해 가는 상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해법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수행하였고, 그 답으로 동학을 창시하였다. <107쪽, 라명재, “천도교와 수련”>
올해는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다. 이를 맞아 7월 22일에 ‘국제방정환학술포럼’이 열렸다. 거기에서 어떠한 발표를 할까 고민하다가 시와 나의 첫 만남이었을 윤석중의 동시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나의 원천(Ursprung)을, 여러분의 원천을 밝히는 일이 되리라고 예감하였다. 소파 방정환의 이름이 들어간 학술대회와 윤석중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나의 유년 시절 기억에 윤석중의 「꽃잎」이 박혔듯이, 윤석중의 어릴 적 기억에는 소파가 새겨져 있었다. <117쪽, 홍박승진, “새로 찾은 1938년 이전 윤석중 작품 44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