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문학의 경우, 인간중심적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섣부른 진단은 아니다. 메리 올리버가 보여준 의물화 기법, 어떤 비인간 사물을 다른 비인간 사물에 빗대는 표현법, 즉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모두 비인간 사물이게 하는 기법은 사실 근대 한국 시인들의 시편에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 18쪽 지구시학
● 지구공동체, 신유물론, 신애니미즘을 관통하는 동학의 철학이 바로 경물(敬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여든 사람’은 바로 ‘퍼슨들’이며, 당당한 행위자로서의 사물(지렁이)은 바로 격을 갖춘 만물을 의미한다. 일찍이 야뢰 이돈화(夜雷 李敦化)가 한울격으로서의 인간격(人間格)을 말했다면, 이제 만물격(萬物格) 사물격(事物格)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해월은 경물의 원리와 방법론은 우주에 가득찬 것이 혼원한 일기로서 서로 이어져 있음(인오동포, 물오동포)를 파지하고, 따라서 만물을 ‘어머니의 살같이’ 공경스럽게 대하는 데 있음을 설파하였다. - 38쪽 인류세 이후: 경물(敬物) 시대를 맞이하는 지혜
● 요컨대 상공업 기술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일진대, 상공업 기술의 반(反)생태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현재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생태 재앙은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인류의 상공업 기술은 자연을 마음대로 만들어 가질 수 있는 공업 기술과 그 생산품을 무한정 즐기려는 상혼이 손을 맞잡고, 자연의 자연성과 생명성을 살리려는 정신과 기술, 대표적으로 노장철학이 추구한 채집적 기술을 철저히 외면한 데 그 치명적 결함이 있다. 따라서 이 결함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생명 살림을 목적으로 농공상의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통일되는 방향으로 경제 체제 전반을 생태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방향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사회적, 정치적인 개벽(開闢)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 53쪽 상공업 기술 사회에서 생태적 기술 사회로의 전환
● 침묵은 가장 극한의 폭력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문화적, 구조적 폭력이 집약되어 존재를 말살할 때, 존재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 된다. 목소리를 잃은 존재는 자기 자신을 잃고, 타인에 의해 혹은 자신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는다. 새만금 간척은 수많은 존재의 목소리를 앗아가는 폭력을 행하고 있다.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구를 잃는 것과 같다. 인간이 지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침묵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중한 존재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소리를 찾아온 것은 지구에서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 149쪽 영화 <수라> 그 이후
● 자의식의 낡은 껍질을 깨고 한울님 모심을 체험하는 것을 강령(降靈)이라 한다. 그를 체험한 뒤에도 우리 마음은 일상 중에 물건에 대한 욕심과 일, 명예, 쾌락 등의 유혹으로 참마음을 수시로 잊는다. 그런 유혹들에도 불구하고 매일 꾸준히 수행하면 한울마음, 그 공변된 마음을 잊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를 ‘양천주(養天主)’한다고 한다. 이렇게 내 안의 한울마음이 커져 자의식을 완전히 대체하면 한울이 멀리 따로 계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한울을 모신 한울사람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내가 한울을 모신 한울사람임을 깨닫는 게 자천자각(自天自覺)이다. 그렇게 일체가 한울임을 깨달으면 모든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내 마음이 한울마음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어떤 생각과 행을 해도 참에 어그러지지 않으니 자유롭다. 이것이 해탈(解脫)이다. 그 자유로운 얽매이지 않는 한울마음에서 진리를 바로 볼 수 있으니 이것이 견성(見性)이다. - 171쪽 천도교 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