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시학 : 지구는 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될까? 이것은 하나의 실효성 있는 문장인가? 예전에 어떤 이가 ‘시적인 것’과 ‘시’를 구별했듯, 우리는 시(poetry)와 시작품(poems/poetic works)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시’란 시 작품으로 아직 구현되지는 않은, 그러나 얼마든지 글이라는 꼴로 구현될 수 있는, 시를 쓰려는 자가 접촉하고 경험하고 있는 원형질의 물질/물질과정을 지시한다. 시작품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잠재태. 나는 이것을 ‘시’라고 불러 보겠다. - 본문 11쪽
● 천도교와 한글, 다시개벽의 동반자 : ‘한글과 동학’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유이(唯二)하게 독창적인 큰 물건”이라는 말은 100년 전의 말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말이다. 한글 즉 우리말을 표현하는 문자란 곧 우리 한국인의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이다. 사람들은 생각을 먼저 하고 그것을 말이나 글로써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 이것은 다수의 언어학자들이 제기하는 인간의 생각이 작동하는 본질적인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은 동학 천도교를 떠날 수 없고, 동학 천도교는 우리말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말은 동학 천도교의 언어적 표현이요, 천도교는 우리말과 생각의 사상적, 종교적, 철학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 본문 44쪽
● 밀려나는 바다의 주인들과 함께사는 법 : 미디어에서 야생동물보전 문제를 다룰 때마다 대체로 해당 동물이 인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왜 우리가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다. 돌고래는 해양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미리 보여주는 지표종이다. 또한 상위포식자로서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바다의 물질 순환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우리는 꼭 이런 이유가 있어야만 돌고래를 보전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돌고래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은 사실 거의 전적으로 인간 활동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들의 안정적인 생존을 오래도록 위협해 왔고, 여전히 위협하고 있는 존재로서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 61쪽
● 대등한 생극의 토론 : 고립론과 차등론은 표리관계를 가지고 우파의 이념 노릇을 한다. 차등론은 상극은 배제하고 상생만 이룩한다는 위장술로 세상을 현혹해 지배 영역을 넓힌다. / 좌파에서 내세우는 주의이고 구호인 차등론은, 좌편향의 차등론으로 변질되어 우편향의 차등론과 경쟁한다. 상생은 기만이고 상극이 진실이라는 주장으로 위세를 드높인다. / 대등론은 중도 노선이다.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임을 분명하게 하는 생극론이다. 좌우파의 편향, 일탈, 과오, 범죄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분투한다. 평화를 이룩하고 화합하면서, 서로 도와 함께 잘살자고 한다. / 우파의 오랜 차등론과 함께, 또 하나의 차등론으로 변하는 좌파의 평등론이 정치와 군사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심각하게 대결해 극도의 불안을 조성한다. 대등론은 아직 미약하지만 희망을 주고, 장래를 낙관할 수 있게 한다. - 본문 146쪽
● 영 케어러의 등장과 돌봄의 미래 : 영 케어러(young carer)란 고령 또는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에게 간호·간병, 일상생활 관리 또는 그 밖의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의미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콜·약물의존 질환을 앓는 가족 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은 사람(young adult carer)’을 가리킨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들을 ‘가족돌봄 청(소)년’으로 명명하였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어떤 돌봄을 제공하고, 가정 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 하는가. 또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충분히 경제활동과 자립이 가능한 청년 까지도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영 케어러 의 정의와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본문 150쪽
● 생명위기 시대, ‘좀비’가 되지 않기 : 이와 관련해서 생명학연구회는 지난 2월 총회에서 연구회의 진로와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 매월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연구회다운 운영을 해 보기로 하고, 회원 각자 염두에 둔 생명(학) 관련 키워드를 공유, 발전시켜서 구체적 성과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가 연구회 회원들의 다양한 관심 영역을 꿰어내는 주제임을 확인하였다. 연구회는 3월부터 월례 모임을 통해 생명위기의 복잡한 현실을 관통하는 핵심 과제와, 생명의 관점에서 변화의 핵심 흐름(트렌드)과 주요 영역 등에 대해 회원 각자가 생각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본문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