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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004] ‘클라이드라마’의 반가운 등장 / 이원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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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구인문학연구소> 오리지널콘텐츠-004입니다. 

‘클라이드라마’의 반가운 등장: <기상청 사람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마리아주

                

                                                                                                                                               

               

이원진 | 지구인문학연구소 운영위원

요즘 핫한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Forecasting Love & Weather)에는 웬걸, ‘결혼’이란 주제가 수도 없이 변주된다. 결혼이란 누군가에겐 이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낱말인데도? 그래도 작가는 집요하게 결혼과 파혼, 이혼, 비혼이란 혼인 상황에 날씨를 연결해 서사를 전개한다.

드라마 속 기준과 유진은 결혼을, 하경(박민영 분)과 기준은 파혼을, 하경의 언니는 이혼을 했고, 시우(송강 분)는 비혼주의자 따라서 하경도 비혼주의자다. 그 뿐인가. 동한 특보는 아내와 별거중이고, 하경의 엄마는 남편과 사별했으며, 시우는 도박꾼 아버지를 둔 가정위기를 겪고 있다. 한쪽에서 혼(婚)을 말한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별(別)을 얘기하며 ‘적정거리’를 계속 묻는다. 결혼은 프랑스어로는 마리아주(mariage)로, 두 사물 사이의 배합, 연합 등의 뜻도 갖고 있다. 그렇다. 바로 와인이 고기와 찰떡궁합으로 맞는가 따질 때 등장하는 그 용어. 

문제는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간 사회의 이 모든 마리아주가 이제 기후에 영향권 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기후가 인간 결합의 조건이 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방송 최초로 기상청을 소재로 다뤘다는 이 드라마의 신선도 지수는 매우 높아진다. <기상청 사람들>은 <소나기><클래식> 등 비를 로맨스의 도구로 차용해온 진부한 설정을 훌쩍 뛰어넘는다. 기후의 속성과 연애의 속성을 싱크로율 높게 설정해 기후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더 실감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의 부제도 “기후도 (저 사람) 마음도 미치도록 맞히고 싶다”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명백하게 기후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기후라는 ‘비인간(non-human)’이 최초로 주연을 맡았다. 모두 기상용어로 점철된 각 에피소드 제목이 이를 증명한다. 시그널, 체감온도, 환절기, 가시거리, 국지성호우, 열섬현상, 오존주의보, 불쾌지수, 마른장마, 열대야. (이상 10회까지). 이쯤되면 이 현상, <클라이드라마(Cli-Drama)의 탄생>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클라이드라마(Cli-Drama)라는 이름은 기후소설을 의미하는 <클라이파이Cli-Fi, Climate-Fiction의 줄임말>를 내 식으로 변형해 불러본 말이다. 기후 소설(Cli-Fi)은 SF 중에서도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하위신생 장르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로 태어났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의 2006년 논문을 읽은 미국 언론인 겸 환경활동가 댄 블룸이 만들었다. 기후소설이 건드리는 모든 소재는 인류세와 기후위기 문제를 담고 있다. 작년에 개봉해 유행했던 프랭크 허버트 원작의 <듄>이나 킴 스탠리 로빈슨 등의 미국 작가가 대표적인 기후소설을 표방한다. 

이 드라마는 그러나 클라이파이와 달리 기후위기라는 용어는 아예 수면 위로 끌어내지도 않는다. 작가는 ‘기후위기’가 주는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완전 배제하고, 기후를 달달한 직장 로맨스물로 치환하면서 인간 마리아주의 현실로 단짠단짠 풀어낸다. 

기후라는 비인간에게 주연을 양보한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주인공은 인간, 그중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공무원들이다. 인간이 기상을 예측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전. 지난 100년간 기후를 가장 황폐화했고 그래서 지금은 기후와 맞서 싸우는 전선(드라마에서 지금은 여름철 방재 기간이다!) 위에 사는 인간을 대표하는 게 기상청 공무원이다. 그런데 하필 탄탄대로를 걷는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여기서는 돌아가며 실수를 연발한다. “사람보다 (슈퍼컴이자 비인간) 기계가 더 대접받은 지” 오래된 씁쓸한 현실에서 이들의 약점을 기자들은 파고든다. 기후문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아예 기상 전문 출입기자까지 뒀다.(대부분의 언론사 현실에서는 인력부족으로 사회부 교육청 출입기자가 기상청을 겸직해서 맡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오늘날 공무원이라는 자리가 사회적 동경을 받는 만큼이나 엄청나게 부담스런 위치라는 점을 부각하려 한다. 공무원을 대표하는 진하경 과장은 가족에게나 회사에서나 독하다란 말을 듣는다. 그만큼 국가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기상청의 사명과 팀원의 실수를 책임져야 하는 과장 리더십으로 무장된 채, 한편으론 결혼을 원하는 부모의 기대를 애써 외면하며 사내연애는 감당하며 예보과를 끌고 가는 버거움은 모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들이 미치도록 맞히고 싶지만 점점 독해지는 날씨만큼 독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기후’란 신종 캐릭터는 가변성이 특징이다. 작은 거 하나로도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는 미세하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프랑스 철학자 이자벨 스탱거의 말대로 “침입자이며, 간질간질 하면 재채기하기 직전의” 민감 주체다. 그래서 ‘연애잔혹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드라마는 인간이 지난 100년 자연과 결별한 후 벌어진 현실을 극복할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 성층권에 있을 땐 지구를 보호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지표면 가까이 생기면 인체에 해로워지는 오존처럼 기후는 어렵다. 그 어려운 기후를 주인공으로 인정한 ‘사람들’(인간)은 이제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자연 또는 기후와의 새로운 마리아주를 상상해야 한다.

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책 [대혼란의 시대]에서 “현재의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반갑도록 신선한 클라이드라마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기상청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잔혹사를 뚫고 지구와의 마리아주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마침 지난 주말은 거대한 울진 산불을 끄는 단 봄비가 지구를 적셨고 기상청은 예보에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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