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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칼럼 016] 교사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 궁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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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모두 파스텔 톤으로 보였던 때가 있었다. 2005년 5월 교생실습 때, 떨리는 마음 반에 기대되는 마음 반을 품고 학교를 바라보던 나의 눈에는 특히 학교가 파스텔 톤으로 곱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에 만나게 된 나의 학생들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면 마음이 무겁고 두통이 생길 정도로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어느 정도 망각되기 마련인데 아픈 기억들이 많았던 것 같다.


출처 : 정의진 기자, “교권 침해, 학생도 무조건 처벌”…’무관용 원칙’ 칼 빼든 서울교육청, 한국경제신문, 2019.05.28, 지면 A29

2019년 5월 29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위 그래프는 교육현장에서의 교권 침해가 매우 심각해졌고 반드시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심각성을 느끼게 해 준다. 꾸준히, 조금씩 심해지고 있는 사건들이 우리의 충격 감지 신경을 둔화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최근 한 고등학교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성희롱이 난무한 평가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부터 매년 11월 중에 실시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원들의 학습.지도 등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익명으로 객관식과 자유 서술식 문항을 통해 조사하고 수합하여 교사가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익명성을 악용하여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학교에서 교사의 인권은 어디있을까?’, ‘학교에서 과연 이런 일이 처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교육청은 2019년 5월 27일 관내 유치원.초.중.고교에 교육활동 침해를 예방하고 사안처리 절차 및 대응 요령 등의 내용을 담은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을 배부했다고 한다. 본인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교육이 아닌 서비스를 요구하는 듯한 학부모의 태도는 끊임없이 발생되는 학교의 문젯거리였고, 교사들에게는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울교육청에서는 ‘무관용 원칙 적용’이라는 문구를 넣으면서 교육 활동의 침해를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교육 활동은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2019년 한 중학교 여교사는 수업 중 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학생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얼굴 뼈가 함몰됐고, 앞서 한 고교생이 교사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기사화 된 몇 가지 이슈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어 본 교실은 정말 ‘정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거나 몰카에 찍히는 등의 일은 흔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교권 침해는 학생들의 욕설, 폭언 뿐만 아니라 폭행과 성희롱 등의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022년 9월에는 수업시간에 한 중학생이 누워서 핸드폰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를 촬영했다. 주변 학생들이 웃는 소리에 바로 영상을 껐지만 그 학생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뻔뻔한 자세는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도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어이도 없고, 화도 났지만 담임교사로서는 이 학생의 행동을 용서했을 수도 있다. 


13년 전, 교탁 밑에 휴대폰을 숨기고 치마 입은 여자 선생님을 촬영해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돌려보던 중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때 온 몸이 부르르 떨리던 기억이 남아 있다. 첫 담임이었던 그 학생들의 종례를 하러 교실로 향하던 나에게 그 어떤 동료 교사나 관리자도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하물며 쉬쉬하며 이 일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관리자들의 태도까지 기억이 난다. 생활 지도부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동료 교사도 있었다. “피해 여성으로서만 생각하지 말고 교사로서 상황을 판단하라.” 물론 맞는 말이다. 교사로서 이성을 갖고 상황을 헤쳐가려고 생활 지도부에 갔었으니, 그렇지만 여교사의 치마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 자체를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바르게 선도할지 대책조차 없이 담임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의 지침은 피해자이자 담임교사인 사람에게는 매우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때, 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말을 목구멍에서 막지 못하고 내뱉었다. “저도 부모님께는 귀한 딸이고, 한 사람으로서 침해당하지 않을 인권이 있어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인권은 안 가르칩니까?” 결국 내 손으로 진술서를 받고 주동 학생을 생활지도부로 데리고 갔다. 가르쳐야 할 중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존중받을 권리, 존중해야할 의무는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모 중학교에서 수업을 하며 직접 겪은 일이다.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고 학생 지도에도 더 어려움이 있다. 민요와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수업에서 허리가 아픈 학생들은 앉아서 악기 연주할 때 힘들다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학생의 눈빛만으로 상태를 확인 한 후 최대한 의견을 수용해서 수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자꾸 이용하는 학생도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서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업에 자꾸 훼방을 놓는 학생도 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흐려 놓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주 호명해서 주의를 주었었다. 

하루는 누워서 북을 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의 눈빛이 변했다는 걸 알아 챈 다른 학생들이 “때려요~, 혼내줘요~” 이렇게 소리를 쳤다. 순간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분위기를 망친 친구에 대한 불만도 이해는 되지만, 일단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한 후에 수업 시간에 누워 있는 행동, 악기를 함부로 하는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학생도 분명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므로 때려서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 한 뒤,  ‘선생님’ 또한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 라고 단단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과 학생 간에 서로 존중하며 지켜야 할 예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가르친 후에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첫 수업 때부터 ‘서로 존중하며 즐거운 수업을 만들어 보자’고 해 왔지만, ‘교육’은 역시 쉽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신을 낳아 준 어버이보다 더 귀한 사람이 영혼을 키워주는 교사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교육에 있어서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라고 했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고, 학생은 스승을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이상적인 교육의 장이 펼쳐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도교에서는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한울이다’라는 사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높고 낮음이 없다는 교리를 펼치고 있다. 이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르침을 주고 받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이렇게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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