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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칼럼 013] 악마적 영감?: 소비러에서 창작러로음 / 박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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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림 보는 것은 무척 좋아한다. 그림 한 장 한 장에는 각각 하나의 세계의 한 부분이 들어있다. 그렇기에 라이트노벨이나 웹소설 등에도 꼭 표지에 해당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 한 장이 표현된다. 그 이미지가 보여주는 세계는 현대의 우리가 겪는 현실세계일수도 있고, 과거 혹은 미래의 시간대를 달리한 세계일수도 있으며, 검과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일수도 있고, 우리 우주와 물리법칙이 어딘가 다른 평행우주일수도 있으며, 트럭에 치여 날아간 이세계일수도 있고 탑이 솟아오르고 시스템창이 뜨는 헌터물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 이는 사실 글쓰기가 묘사하는 세계와 다를 바 없지만, 한 장의 그림에는 그 세계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기에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그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지 않은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재미도 준다 하겠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눈부시다. 수백만장의 이미지를 학습하여 얻은 알고리즘을 통해 이미지를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 역시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주 박람회 미술전에서 제이슨 앨런이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A.I.프로그램을 이용해 출품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란 작품이 신인 디지털아트 부문 우승을 차지하여 이목을 끈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는 단어를 입력하면 그에 따른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앨런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자신을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치 딴 세상의 악마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 작품은 자신이 그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을 감추어 기만적으로 우승한 것이 아니다. 미드저니를 이용한 사실을 밝혔고, 디지털아트 부문 규칙을 준수하여 제출된 것이다. 

 

                

                                                                                                                                                
                            

제이슨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해당 이미지는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고전적 드레스를 입은 세 명의 여인들이 침침한 건물 안에서 둥그렇게 뚫려 바깥이 보이는 곳을 향해 서 있는데, 그곳에서 오는 환한 빛 때문에 마치 보름달 같이 보인다. 그래서 마치 여인들이 우주에서 직접 달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처럼 두근거림을 주며, 여기에 묘사된 세계의 바깥으로 향하고 싶은 느낌을 준다. 이 한 장의 그림으로 이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작품만으로 평가한다면 인상적이고 과감한 이미지를 잘 보여준, 과연 악마의 영감을 받은 수작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것처럼 정말로 이 그림에 상을 줄 수 있는지 하는 의문도 마음 한 켠에 든다. 그림이란 재능을 바탕으로 수 년에서 수십 년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어진 실력을 바탕으로 그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난 애초부터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나도 순식간에 내가 그렇게 꿈꾸던 멋진 작가가 될 수 있다니!

 

2016년, 조영남이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리지 않고, 조수가 대신 그렸다는 이유로 고소된 적이 있었다. 조영남은 대작은 인정했으나, 그럼에도 해당 그림의 콘셉트는 자신의 것이기에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반발하였다. 이에 진중권은 현대미술에서는 이것이 논란거리가 아니며, 컨셉트가 중요한 것이라 변호하였다. 그 콘셉트를 물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그 예로 앤디 워홀의 경우를 들었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주지하다시피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조영남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AI프로그램을 이용한 예술창작에서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성립할 것이다. 물론 조영남의 경우 대작을 한 작가는 인간이었지만, 결국 창작자 본인의 콘셉트와 그를 물질적, 물리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방편의 구도라 하겠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역시도 뚝딱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앨런은 원하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80여 시간의 공력을 들였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콘셉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 안목과 노력이 해당 작품을 자신이 ‘창작’하였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SNS에서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를 ‘창작러’, 이를 감상하는 이를 ‘소비러’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창작러가 되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어 소비러에만 머물렀던 이들도 많을 것이다. A.I.프로그램으로 웹툰을 그린 경우도 이미 나왔다. 악마적 영감마저도 A.I.프로그램이 던져줄 수 있다. 우리는 소비러로 오랫동안 갈고닦은 비평가적 안목을 통해, 해당 작품이 ‘인간’이 보기에 괴이한 구석이 없는지를 점검해 가며, 우리의 고유한 콘셉트를 무사히 작품으로 완성해 내는,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창작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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