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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칼럼 010] 좋은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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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 중에 재미있으면서도 크게 공감하는 것이 하나 있다.

“Life is BCD”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였던 사르트르의 말인데, 다시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다.

“Life is Birth, Choice, Death”

삶은 태어남과, 선택과, 죽음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는 삶은 곧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선택을 삶의 가장 원초적인 속성을 정의하는 것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하루를 잠깐 생각해 본다. 아침에 알람을 들으며 지금 일어날 것인지 5분 뒤에 일어날 것인지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물을 먼저 마실 것인지 화장실을 먼저 갈 것인지, 가족을 지금 깨울 것인지 조금 더 자게 놔둘 것인지, 출근을 45분에 해야 하는지 아니면 50분에 해도 되는지, 출근하면서 앞에 신호가 바뀔 것 같은데 엑셀을 조금 더 밟을 것인지 말 것인지, 도착해서 무슨 일을 먼저 할 것인지,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을 건지 나가서 먹을 건지, 점심시간에 쉴 건지 일을 좀 더 할 건지, 집에 몇 시에 갈 건지…. 결국 잘 때 애들을 따로 재울 것인지 같이 잘 것인지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매순간 끊임없이 우리 앞에 주어지는 선택지 중에는 매우 일상적이고 단순한 것도 있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도 있으며, 때로는 도덕적인 것,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편리하지만 양심에는 걸리는 것을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것도 있다. 이때 각각의 선택들을 어떤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준에서 나는 어떤가 하고 가만히 돌이켜보면, 나는 아직 그에 관한 한 확고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똑 같은 경우 수에 대해서 그때그때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고, 선택을 하고 나서 매우 후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한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해서 “나는 선택장애가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누가 나 대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별 고민 없이 척척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이런 고민의 과정에서, 그나마 일관되고 좀 더 좋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그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이 방법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하나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방법이란 바로 내 아이를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 ‘아이가 직접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혹은 이 선택이 내 아이에게 향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고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많은 경우에 더 쉽게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먹어갈수록 점점 더 많이 경험하고 있다. 특히 아이가 선택의 순간에 같이 있으면 그 효과는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최근에 내가 내린 가장 큰 결정은 이직이었다. 원래 직장에서 11년 정도를 근무하다가 아주 우연히 이직 기회가 왔는데, 더 큰 기업으로, 더 양호한 근무조건으로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원래 직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근무조건이 어느 정도 좋다는 정도로는 이직을 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다만 출퇴근도 오래 걸리고(왕복 3시간 이상), 외근 출장이 많아서 생활이 불규칙했던 데다가, 잔무가 많고 전화 연락이 많아서 휴가를 쓰는 것도 힘들어서 주말 외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사춘기가 오면서 자기 엄마랑 갈등을 많이 겪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 그때와 같은 근무여건 하에서는 아빠로서 함께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고 싶은 여러 가지 이유들보다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결국 이직을 결정했다. 일에 있어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아이를 위한 최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런 큰 결정 외에도,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상황에 있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길 원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가장 단순한 예로, 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를 어중간하게 건너야 하는 상황을 들어보자. 혼자 운전하면 그냥 지나갔을 상황이라도 가족과 운전하게 되면, 특히 아이들을 태우고 있으면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크고 작은 경험을 할 때마다, 내 아이가 나의 선택의 기준이고 또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거울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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