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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칼럼 008] 지도에 없는 섬 / 신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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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섬을 찾아 떠났다


달은 곱게 떠 있고 나는 묻지 못한 말을 떠올리며 먼 밤길을 걸었다. 돌아보면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이 왔던 길만큼 멀어져갔다. 


전생처럼 아득히 먼 기억이 있는가 하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그 여름 나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고 있었고 연구소 지하 벙커에서 해가 뜨는지 지는지 바람이 부는지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는 채, 컵라면을 하도 많이 먹어서 ‘나는 죽어서 한 200년 안 썩을 거야’ 혼잣말을 반복할 때였다.

조금 더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던 무렵에 친구들과 ㄷ의 스타렉스를 타고 화천으로 돌쑥을 만나러 간 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몸을 돌보자고 했다. 

소문혁, 별음자리표, 돌쑥

그 외에 그를 부른 이름들은 더 있었을 것이다. 

이름은 부르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부르는 거니까. 

우리는 그를 돌쑥이라고 불렀다. (돌쑥은 우리와 만난지 꼭 1년 만에 다른 별로 떠났다)

돌쑥은 몸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꽤 오래 이야길 했다. 


"실천하며 의심하라

내 뇌를 납득시키고 설득시키지 말고 실천하면서 그냥 해 

까짓것 뭐가 무서워

그러다보면 (몸이)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중요한 건 그거예요

사람들이 안 믿어요

하지만 눈으로 보여요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우리 몸은 그만큼 재생력이 높아요"


나는 좀 삐딱했다. 돌쑥이 몸에 대해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쑥과 산길을 걸어 친구들과 손을 잡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널 때, 따뜻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 안으며 바위에 누웠을 때, 돌쑥이 말하는 ‘몸’이 '삶'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 돌쑥은 몸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던 것.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몇 달 뒤 김종철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ㅅ을 다시 만났다. 내가 여전히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있고 그날도 어디선가 분주하게 달려간 나를 알아본다. “너 그러다 죽어”

그리고 친구는 요즘 길을 걷고 있다고. 볼음도라는 곳에서 열린 한 달간의 불멍캠프가 길멍캠프로 전환되어 걷고 있다고. 

목적지는 ㅊ의 집이 있는 ‘청도’라고 했는데, 나는 그곳이 대구가 아닌 중국 ‘청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 언제 하루이틀 같이 걸어줄게. 


그렇게 시작되었다. 

ㄷ과 나는 그럼 함양의 녹색대학에서 만나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출발했다. 

코로나로 인해 동아시아 곳곳에 흩어졌던 친구들이 하나 둘 친구의 친구를 부르고 ‘게더링’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무슨 일에서든 마음 먹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해도 이 친구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기는 어렵겠다. 

달을 보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하늘에 고하는 것처럼 맑은 마음들이 모였고 하늘에서는 비를 내리셨다. 

느슨하면서도 촘촘히 연결된 나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명쾌하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길멍은 그런 친구들을 묶어주고 이들을 싣고 가는 ‘지구순례열차’로 먼 길을 떠났다.

나는 길멍친구들에게 ‘걸어서 만주까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친구는 목적지가 꼭 ‘만주’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만주’가 목적어가 아니라 ‘걸어서’가 목적어라고 말했다. 

논문을 쓰는 틈틈이 나는 길멍을 따라 나섰고 길을 걷고 탁발을 하며 마을회관이나 정자에서 잠을 자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에 하룻밤 묵어가며 길을 걸었다.

추우면 버려진 옷을 주워 입었고 배가 고프면 편의점과 빵집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얻어 먹기도 했다.

우리의 이웃들은 기쁘게 밥과 잠자리를 내어주고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마늘을 까고 마당을 쓸며 밥값을 치르면 할머니들은 옥수수를 삶아 가방에 넣어주었다.

길멍이 길을 걷는동안 친구들은 어디선가 걷고 있는 길멍을 찾아와서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며칠씩 함께 걷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길을 떠나곤 했다.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자유롭고 평화적이었다. 누구 한 사람라도 동의하지 않는 일에는 강요하지 않았고 기다려주고 걱정해주었다.

“오늘 기분은 어때?”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와 친구와 가족과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을까?


길멍캠프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누구든 다시 길을 떠나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테니. 


나는 벌써 재작년 여름의 이야기를 바로 어제의 일처럼 이야기했지만, 너무도 아득하여 전생처럼 먼 이야기 같기도 하다. 

지도에 없는 섬을 찾는 꿈을 꾼다. 

나의 친구들, 

오늘 기분은 어때? 


그리고, 돌쑥

어디엔가 환하게 웃고 있을 거라고 믿을게요

돌쑥을 만난 어느 봄날 친구들과 처음으로 손을 잡고 산등성이를 물들이던 봄나무들을 자세히 보았어

산골짜기를 건너 따뜻한 봄볕이 내리던 바위에 앉아서 부르던 노래도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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