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저자가 서울에서 공부 모임을 갖는다고 해 우이동 봉황각을 찾았다.
기온은 낮았지만 햇살이 화창한 일요일 아침,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붐빈다.
북한산 등산로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봉황각이 있다.
1912년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지도자의 교육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봉황각에 도착하니 김재형 저자와 사람들이 차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자가 반갑게 맞으며 바로 나를 차에 태워 이동.
봉황각에서 저자가 강의하는 모습을 촬영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건 예상을 못했다.
김재형 저자는 오랫동안 주역과 동학 같은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 왔다.
그동안 모시는사람들을 통해 동학 경전 중 하나인 해월신사법설을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낸 『동학의 천지마음』, 한중일 세 언어로 노자 도덕경을 풀이한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그리고 최근에는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독특한 감성으로 해석한 『동학 편지』를 출간했다.
2월 26일과 27일, 1박 2일 동안 『동학 편지』와 『동학의 천지마음』을 가지고 공부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근현대사기념관 앞.
전날에는 봉황각에서 『동학 편지』를 중심으로 공부했고, 오늘은 이 부근에서 『동학의 천지마음』을 가지고 공부한다고 한다.
전날 공부했던 『동학 편지』는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선생의 경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동학의 천지마음』은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경전 『해월신사법설』을 김재형 저자의 독자적인 방식과 문법으로 해설한 책이다.
근현대사기념관 주위로는 북한산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애국지사 묘역이 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이준 열사 묘역.
이준 열사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특사로 파견되었다가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에서 순국한 분이다.
제단에 청수를 놓고 참례한 후 바로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은 하늘을 떠날 수 없고, 하늘도 사람을 떠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호흡 하나 하나, 움직임 하나 하나, 먹고 입는 것 하나 하나가 하늘과 서로 이어져 함께 가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의지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온전히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사람이 있어야 하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 『동학의 천지마음 』 60쪽 「천지부모」
모인 이들이 다함께 소리내어 읽고 나면 김재형 저자가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을 한다. 그러고 나면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궁금한 점을 묻고, 저자가 답변하기도 하고 참가자들끼리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이 행사에 강좌라거나 강연회가 아니라 ‘산하대운 순례’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김병로 선생 묘소, 유림 선생 묘소를 찾아 참례하고 공부하고를 계속했다.
점심 식사 후의 일정은 근현대사기념관부터.
기획전시실과 강의실이 있는 기념관 2층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곳에서 다시 공부. 여기서 공부할 부분은 『해월신사법설』의 「독공」, 「천도와 유불선」, 「개벽운수」 부분이다.
“동학은 유교, 불교, 선도(仙道)와 비슷한 것 같지만 유불선 어느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세상에 처음 드러난 무극대도(萬古無之 無極大道)라고 했습니다. 옛 성인들께서는 근본이 아니라 지엽적인 부분만 말했습니다. 수운 스승님께서는 천지(天地), 음양(陰陽), 일월(日月), 귀신(鬼神), 기운(氣運)과 같은 천지인 조화의 근본을 처음 밝혔습니다(天地陰陽日月鬼神氣運造化). 이런 이치는 총명하고 마음이 밝은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데, 이해하는 사람이 적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 『동학의 천지마음 』 134쪽 「천도와 유불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 사람과 만물이 모두 새로워지게 됩니다(新天新地 人與物新). 만년에 크게 한 번, 천년에 적당히 한 번, 백년에 작게 한 번 변하는 것은 우주 천체의 운행입니다. 천년에 크게 한 번, 백년에 적당히 한 번, 십년마다 작게나마 바뀌는 것은 인간 세계의 일입니다(千年大一變 百年中一變 十年小一變). 오랫동안 번성한 것은 곧 쇠퇴하고, 오랫동안 쇠퇴했던 것들은 다시 번성하게 됩니다.” - 『동학의 천지마음 』 144쪽 「개벽운수」
공부 후에는 바로 옆 기획전시 심산 김창숙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 특별전 “시대에 맞서 싸운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을 관람하고 바로 이어 김창숙 선생 묘소를 찾았다.
무궁화 조화가 꽂혀 있는 김창숙 선생의 묘소에서 참례하고 『해월신사법설』 중 「부인수도」, 「향아설위」, 「삼경」 부분을 공부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며 나아가 사물을 공경하는 경천, 경인, 경물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 chatGPT로까지 확장되었다.
내가 동행한 것은 여기까지.
이후에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 공연 관람 일정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관동대지진 100년 「독립운동가의 노래 2」 음반 발매 기념음악회였던 것 같다.
‘그냥 가서 촬영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일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고생을 자처했다.
이런 장비 저런 장비 때려 넣은 가방이 제법 무거워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촬영하고 나니 다리가 제법 아프다.
돌아오는 버스, 나를 고생시킨 그 짐덩이라도 행여 잃어버릴까 꼭 끌어안고 골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