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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 『일상이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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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_교수신문



『일상이 철학이다』 | 이종철 지음 | 모시는 사람들 | 317쪽


_교수신문 최승우 기자 



이종철 선생을 처음 뵌 것은 아마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던 작년 4월이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아닌 철저한 독자와 작가의 만남이었다. 첫 인상은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깊게 파인 미간주름이었다. 채 마흔도 안 된 나이에 탈모가 진행 중인데다가 미간에 벌써부터 주름이 잡힌 나와 동일시 되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나이가 더 든다면 아마 선생의 얼굴이 되지 않을까? 선생에게는 쇼펜하우어같은 허를 찌르는 냉철한 독설과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파괴적 창조가 있었다. 해박함과 달변에 나는 마치 전류가 흐른 것처럼 매료되었다. 그는 지성계의 아웃사이더이며 일종의 반란군이다. 


철학의 대중화, 실용적 철학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브나로드’ 


『일상이 철학이다』는 전작 『철학과 비판』에 이은 이종철 선생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철학자 이종철이 철학을 도구로 세계와 영화, 정치와 역사를 조망한다. 마지막은 ‘한국의 대학과 교육’에 대한 일침으로 마무리한다. 내가 선생의 문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타 지식인들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적 허세나 만연체 대신 진솔하고 아이같은 천진함이 담겨있다. 「제1부 일상과 철학」 63페이지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끔씩 무례한 젊은 친구들이 고령자들을 ‘틀딱’이니 ‘거시기도 서지 않는다’니 조롱하는 경우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숨 멎을 듯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선생 특유의 구수한 말투가 ‘음성지원’된 탓도 있다. 예컨대 이어령과 김훈은 결코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소위 먹물들이 지양하는 표현들을 선생은 거침없이 차용한다. 이처럼 직설적인 어조는 저자의 매력이자 정체성이다. 


「제2부 영화와 비평」, ‘<필라델피아>와 이반의 사랑-1’ 의 한 대목도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른바 pc통신이 한창 유행할 때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같은 통신망들의 대화방은 밤만 되면 북적거리던 시절이다(중략), 그런데 어느 날 ‘이반’이라 이름 붙인 대화방에 들어가려니까 일반인지 이반인지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학년 몇 반’정도로 생각해서 그냥 일반이라니까 일반은 안 된다고 하면서 입장 불허하는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동성애자들의 방이라고 한다. 그 사정을 알고는 그 방 근처만 가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왕성한 호기심에 나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단순히 동성애의 난감함으로 글이 마무리되면 아무래도 심심하다. 직업병처럼, 동성애자였던 비트겐슈타인, 미셸 푸코를 소환시킨다. 책 제목처럼 정말 『일상이 철학이다』. 이 책의 장점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철학자들 중 이만한 가독성을 뽐내는 이는 손에 꼽을 것이다. 독자들의 눈높이를 감안한 친절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일상을 철학 이론과 연계하는 탁월성이야말로 본질적 정체성일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제5부 역사와 문자, 그리고 한글」, ‘고대사 연구와 문헌’에서 눈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내용을 읽었다.


“한단고기에 등장한 수많은 내용이 고고학과 천문학 등 현대의 많은 과학적 탐구들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불구(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위서(僞書)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올바른 학자로서의 태도가 못 된다.” 


한단고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아주 굉장히 실망스럽다. 옥의 티처럼 느껴진다. 단언컨대 훌륭하기 그지없는 이 책의 신뢰성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자충수라고 생각한다. ‘한단고기’는 오죽하면 조선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단군릉(그 마저도 사기에 가까운)을 만든 북한조차 ‘참담하다 느껴’ 위서로 판단한 책이다. 한단고기는 과학과 이성이 아닌 종교와 극단적인 왜곡주의의 상징이다. 편견과 오해의 차원이 아닌,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 역사학이라면 당연히 무시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병도를 위시한 주류사학계를 무조건적 ‘식민사관’으로 매도한다면 할 말은 없다. 적어도 합리와 이성을 따져야 하는 철학자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내용이다. 


추측컨대 혹여 선생의 내셔널리즘, 애국주의가 앞섰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 뜨거운 이종철 선생은 어쩌면 “철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철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애정이 꽤나 지나치다. 선생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있는 나로서는 무조건적인 찬사같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이 장기적인 입장에서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훌륭한 책에 삽화가 없다는 것도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글이 워낙 가독성이 좋아 읽는데 피곤함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왕이면 그림까지 있었다면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전설적인 미국의 풍자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에세이 ‘나라 없는 사람’보다 어쩌면 이 책이 한 수 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중간중간 삽화가 있었다면, 판매 부수가 조금이나마 더 오르지 않았을까? 최근들어 대두된 대중의 문해력 부족은 필연적으로 그림을 위시한 이미지를 찾게 한다. 애초부터 대중서를 표방했다면, 출판 관계자가 한번쯤 고려해봤을 법도 한데 그 점이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철학계의 이단아


현대철학은 너무 현학으로 흘러 대중과 괴리된 측면이 크다. 일전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철학자 이종철은 이에 반기를 들어 에세이철학의 기치를 올렸다. 나는 그에게서 록 음악의 거친 기타 리프를 느낀다. 일종의 반항아, 이단아에게서 풍기는 강렬한 냄새가 짙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미적지근한 한국사에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문체반정’ 연암 박지원과 ‘고집쟁이’ 공병우인데 공통점은 주체적인 시각을 가진 괴짜들이란 사실이다. 감히 주장하자면 이종철 선생도 궤를 같이 한다. 그가 내 반골 기질을 자극했다. 

특히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선생에게서 공병우와 스피노자의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는데, 전자는 세벌식 자판을 보급하기 위해 애플 컴퓨터로 천리안과 나우누리를 사용하며 서거하는 순간까지 연구했던 공 선생을, 후자는 철학을 본업으로 렌즈깎는 일을 부업으로 삼았던 스피노자처럼 이종철 선생도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서 철학을 재정립하기 때문이다. 그 연세에 pc조립을 식은 죽 먹기로 하는 분은 드물다. 


첫 만남에서 선생이 내게 하셨던 말씀이 워낙 강렬해 잊지 못한다. 그는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고 “나를 밟고 꺾고 올라서게”라고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간화선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겼다. 철학은 제자가 스승을 죽이면서 영원히 진화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죽였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서양철학 2천년을 지배하던 플라톤을 다시 죽이면서 현대철학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왕성한 호기심, 실용주의는 그를 표현하는 상징일 것이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운동의 공력이 느껴지는 대단한 악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성계의 현역 파이터다. 최정점에 선 거장들의 나태함이나 매너리즘이 없다. 마치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재야무림 고수 같은 느낌이 난다. 그나마 ‘네이버 프리미엄 서비스’가 그를 알아 본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낀다. 


한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언젠가 마주할 선생의 별세는 일개 도서관 수준을 초월해 거진 마을 단위 규모의 거대한 단과대학이 소실되는 초대형급 피해일 것이다. 때문에 아주 많은 저작을 남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 『일상이 철학이다』 씨종자 글이었던 페이스북 게시물은 인터넷 특성상 금새 휘발된다. 훗날 찾기도 어렵다. 정 오프라인 출판이 힘들다면 pdf 파일이라도 남기시기를 바란다.


https://url.kr/6ryq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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