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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 발간 / 미디어붓다 / 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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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 발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종교문화비평총서 10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국내외 종교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종교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와 비평을 통해 종교에 대한 건전한 의식을 함양하고 바람직한 종교문화를 창달하는 데 기여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종교문화비평총서를10 『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를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발간했다.

모든 음식이 주검이라고 하는 종교의 이해는 음식 윤리의 기반이고 종국이다. 생명은 생명을 죽여 그 주검을 먹고 비로소 산다고 하는 역설을 터득하는 일이 또한 구원의 현실성을 위한 행위규범을 마련하게 한다는 것도 종교의 음식 윤리가 함축하는 내용이다. (39쪽)

음식이 종교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렌즈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종교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움직이며,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먹는 것들 속에 있다. ᠁ 우리가 종교를 연구하면서 음식과 같은 물질적 감각적 세계로 관심을 전환하게 된 것은, 이것이 단지 그러한 ‘종교’의 ‘표현’(expression)이나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가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85쪽)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속의 타락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어쩌면 ‘음식’ 문화이다. ‘먹방’이라는 이름의 음식 희화화의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섭취 과잉’에 따른 비만에 시달리며, 직접 혹은 간접으로 비만이 사인(死因)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식량이 상품이 된 지 오래고, 무기로도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속에서 종교는 세속을 계도하고 교화할 역량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세태에 어떻게 스스로를 적응시켜 갈지를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음식에 관해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은 역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화되어 수억 명의 인류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아의 한계선상에서 허덕이고, 그 반대편에서는 하루 수십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식량의 무기화 문제도 그러하고, 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열대화)로 인한 식량위기도 점점 고조되는, 빈곤과 과잉의 모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정치적, 제도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음식이 무기가 되고, 이윤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며,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 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이 없어 굶어 죽는 상황에서 평화라는 말은 공허하다. 먹는 행위에서 공평과 조화, 즉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서 어떻게 인간다워질 수 있을 것인가. 정책으로 평화를 이루려 시도한다면, 무엇보다 음식의 원리에 충실해야 하며, 먹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식안을 열어 가야 하는 것이다.(287쪽)

일찍이 동학(東學)에서는 ‘밥을 먹는 것은 한울님을 먹는 것’이라고 설파했거니와, 이런 관점의 음식 이해, 즉 먹는 것 혹은 음식을 거룩한 행위와 성스러운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일관되게 지시하는 요소이다. 인간을 기준으로 먹는 것과 먹히는 것(음식)은 인간 생명의 기본 토대가 되는 행위이다. 생명 문제라는 점에서 이것은 자연히 종교로 이어진다. 종교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억지로, 단기간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음식의 본질-진리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묘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학 및 천도교의 음식문화는 환경과 대립하기보다 조화하여 환경을 보존하면서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미래 의식에 연관되어 있다. ᠁ 자기 안에는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우주생명을 공경하여, 거기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실현이다. 자기 안에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면 이웃 안에도 살아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이웃을 공경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할 수도 있다. 나아가 동식물과 무기물 안에도, 기계에까지도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다. (258쪽)

오늘의 종교-신앙이 절대자에 대한 믿음의 헌신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게 함으로써 신성(神性)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수양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몸의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된 음식의 문제가 종교 연구의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근래에 비로소 시작된 일이 아니다. 본디 종교는 그 태생에서부터, 음식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 생존의 기본조건인 음식의 의미를 구축하는 데서부터 인간의 가치 구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늘날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음식 문화는 대체로 1차적으로 그 지역의 풍토나 산물(産物)과 관련되면서, 2차적으로 종교적 의미망을 경유하면서 그 의미가 형성되고 먹을 것과 못 먹을 것, 먹을 때와 아닐 때, 그리고 먹는 법 등의 음식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후 종교적 맥락이 끊어진 뒤에도 그 문화 자체는 세속화된 형태로 존속되어 이어져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오늘날 인류는 누구나 종교적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가 지구촌화하면서 종교와 음식 사이의 맥락은 탈락되고 오로지 ‘먹는 것’만 남아서 미각과 시각의 충족이라는 허식(虛飾), 포만감 만끽이라는 동물적인 추구 행위로 전락하는 중이다. 종교와 음식의 연결고리는 겨우 종교 집단 내, 종교 공간 내에서의 종교의례로만 그 의미를 보존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탈-종교의 자리를 파고든 식탐과 먹방, 음식물 쓰레기와 기아 등의 아비규환을 제어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식안은 그저 개인의 만족과 행복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식안이 열리면 사회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모든 식사가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가 일체 생명체가 생명의 원리에 부합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운동에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음식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폭력도 줄어들거나 사라져 갈 것이다. 음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일이 발생할 리 만무할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나눌 줄 아는 자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식사는 인간이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이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행위이다. (288쪽)

종교의 맥락에서 음식을 이해하는 일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준다. 반면 음식을 매개로 종교를 새롭게 인식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종교와 음식문화>는 이 주제에 관한 입문의 글이다. 단순한 관계 해설이 아니라, 음식문화에 대한 종교학적 해석을 시도하여, 이후 논의가 깊이를 더하도록 하였다. 특히 종교와 음식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음식의 세속화가 가속되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와 종교공동체가 보이는 대응 양상을 고찰하는 것이 종교학의 중요한, 새 과제임을 보여준다.

책의 ▲제1부는 ‘세계종교와 음식문화’로서 <유대교의 희생제의와 음식>은 유대교의 음식금기를 통해 음식과 종교의 관계를 살핀다. 유대교의 음식법(카슈루트)은 야훼에 의해 구별된 집단이라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생활양식이다. <중세 여자 성인들의 음식>은 캐롤라인 워커 바이넘의 서구 중세 종교사 연구를 ‘음식, 몸, 물질의 종교’라는 세 가지 주제어를 통해 종교학의 맥락에서 재검토한다. 즉 음식, 몸, 물질은 단순히 종교에 의해 통제되고 만들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종교를 구성하고 만드는, 그리하여 기존의 종교상징과 구조마저 바꾸는 힘이 됨을 보여준다. <마늘에 담긴 불교사>는 초기 불교 문헌에서부터 부파불교와 대승에 이르기까지 마늘에 대한 인식을 인도 주류종교 바르나적 시각과 비교하면서 고찰한다.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마늘은 종교적 성취를 방해하는 수행상의 장애물로 인식되어, 음식으로부터 탈락되었다. <마쓰리와 신찬>은 이세신국의 일별조석대어찬제, 신상제(神嘗祭/新嘗祭), 식년천궁제, 대상제를 분석하여 신찬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찾고 있다.

▲제2부는 ‘한국종교와 음식문화’로서 <한국 불교 의례에서 먹임과 먹음의 의미>는 한국 불교의 불공, 승재, 시식의 3종 의례에서 ‘먹임’과 ‘먹음’의 의미를 고찰하여, 초월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 신앙심, 국가와 교단 간의 정치사회적 권력관계, 그리고 우주적 차원의 불교구원론이라는 다양의 의미의 지층이 중층적으로 포섭되어 있음을 밝혔다. <굿 의례 음식>은 굿에서 음식이 신을 위한 제물이며, 아울러 굿의 성격, 무속의 신, 굿을 하는 제가집 등 굿 전반에 대한 포괄적 정보를 함축하는 기호임을 밝힌다. <천도교의 음식문화>는 천도교 음식문화의 사상을 오늘날 생태 문제와 관련 지어 검토한다. 밥을 나누고 함께 먹는 것을 한울님의 ‘일’이라고 보는 동학의 밥 사상에는 전체 생명의 순환성, 다양성, 창조성과 생명 공경의 의미가 함축되어 오늘날 ‘한살림 운동’ 등에서 살아 숨쉰다고 보았다. <식탁에서 평화까지>는 ‘먹는 행위’와 ‘먹히는 음식’이 생명의 기본 원리를 구성한다는 전제하에,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및 먹는 행위의 의미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시도한다. 음식이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되고, 공장식 음식 소비가 만연하는 등 식맹이 된 현대인이 식안(食眼)을 갖추어 음식의 자연적 원리와 사회적 의미에 대한 눈뜸으로써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자고 제언한다.

<출처: 미디어붓다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3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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