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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삼신일체의 서구적 변용 / 일요서울 / 한국학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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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자의 한국학 산책]삼신일체의 서구적 변용

천·지·인 삼신일체라는 생명 코드는 마고성(麻姑城) 시대 이래 우리 한민족 정신문화의 총화였을 뿐 아니라 동·서양의 문화·문명을 발흥시킨 모체였다. 천·지·인 삼신일체는 동서고금의 철학과 사상, 종교와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의 정수(精髓)를 밝힌 것으로, 그것의 서구적 변용으로 나타난 것이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다. 삼신일체와 삼위일체는 표현만 다를 뿐 심오한 생명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생명의 본체를 나타낸 ‘천(天)’과 ‘성부(聖父)’, 그 작용을 나타낸 ‘지(地)’와 ‘성자(聖子)’, 그리고 본체와 작용의 합일을 추동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인(人)’과 ‘성령(聖靈)’은 상호 조응한다.

여기서 ‘인(人)’의 실체는 물질적 육체가 아니라 참본성 즉 일심(一心)이며, ‘성령(신성한 靈, 즉 영성)’의 뜻도 마찬가지로 일심이다. 그래서 성령이 임해야, 다시 말해 일심의 경계에 이르러야 성부와 성자가 한 분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생명의 본체와 그 작용이 하나라는 것은 마치 바닷물과 파도의 관계와도 같이 하나인 근원[一]에서 우주만물[三, 천·지·인]이 나왔다가 다시 그 하나인 근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일즉삼(一卽三)·삼즉일(三卽一)’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따라서 하나인 근원[神]과 우주만물은 분리될 수 없으므로 생명은 전일적이고 자기근원적이다.

서양 기독교 문명의 발원지는 중근동 지역이다. 중근동 지역은 마고(麻姑)의 종족들이 ‘오미의 변(五味之變: 지소씨가 포도를 따 먹은 사건)’ 이후 출성(出城)을 결의하고 네 파로 나뉘어 동서남북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중 파미르고원의 서쪽인 월식주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후 환국 말기에 환국 12연방 중 하나인 수밀이국(須密爾國) 사람들은 선진문물을 가지고 마고의 종족들이 분거해 간 월식주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명을 열었다. 바로 이 수메르 문명이 서양 기독교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

로마제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교의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레니즘 세계와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제국으로 전파된 것은 유럽의 사상적·문화적 및 정신적 전통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의지적·윤리적·종교적 특성을 띤 신 중심의 헤브라이즘이 이성적·과학적·미적 특성을 띤 인간 중심의 헬레니즘과 융합하여 유럽 사상과 문화의 2대 원류로서 유럽의 정신적 전통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실로 크다.

그리스도교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그리스도교 공인(313)에 이어 니케아 종교회의(325)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정통 교리로 규정되었다. 4세기에 들어 ‘정통 신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와 교부철학(敎父哲學)의 대성자(大成者)인 아우구스티누스 등 정통파의 설(說)이 확립되어 중세 천여 년의 신조가 되었다. 천·지·인 삼신일체의 서구적 변용의 실태는 신플라톤주의 전통과 유대교적 그리스도교 전통을 결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삼위일체론』에 잘 나타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제8권 4절 마지막 부분은 신과 세계와 인간의 관계, 즉 자연적[형이상학적]·이성적[인식론적]·도덕적[윤리학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그의 삼위일체의 신조를 보여준다. 그가 말한 신과 세계와 인간의 관계적 본질은 곧 천·지·인의 관계적 본질이며 삼위일체[삼신일체]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삼위일체론』에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三位)의 관계를 육적(肉的)으로 유추할 수는 없다고 보고 삼위 모두 동등한 불변의 영원임을 설파했다.

삼위일체의 교의는 ‘신은 사랑(God is love)’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 마음 자체에 대한 지식, 그리고 마음 자체에 대한 사랑은 신성한 삼위일체의 이미지이다”라고 함으로써 하나인 마음(一心) 이외에 다른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신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 사랑의 근원은 같다”라고 했다. 우리 상고시대에 홍익인간·경천애인(敬天愛人)의 실천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가복음」(12:29)에서는 신이 오직 한 분임을 밝히고 있고, 「요한복음」(14:6)에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여 신은 곧 생명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신이 한 분(유일신)이라는 의미는 곧 생명의 전일성을 밝힌 것이다. 생명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에너지 무도(energy dance)’이며, 신(神)의 영원성(「요한계시록」(1:8, 21:6))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삼신일체와 삼위일체는 생명의 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생명의 전일성과 자기근원성을 밝힌 핵심 원리는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출처: 일요서울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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